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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보혁의 이분법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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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보혁의 이분법을 넘어서

입력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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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방미 이후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를 둘러싸고 국민여론이 첨예하게 양분화되고 있다. 보수층에서는 이번 방미가 한미 공조의 복원을 통해 안보 불안을 크게 해소시켜준 실용주의 외교의 쾌거라고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를 지지해온 진보 진영에서는 이번 방미가 굴욕 외교의 전형일 뿐 아니라,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동시에 지지세력에 대한 배신행위라고까지 폄하하고 있다.이러한 남남갈등의 증폭 현상은 한미 공조와 남북 공조를 보는 시각차에서 유래한다. 보수층은 북한이 아직도 대남 적화통일의 기존 전략과 핵 무장의 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미 동맹의 강화 등 강력한 한미 공조를 통해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볼 때 한미 공조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노 대통령의 이번 방미 행보는 북한의 핵 무장 저지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지극히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진보진영에서는 반핵 보다는 반전이 더욱 시급한 현안이라고 본다. 이들은 미국이 핵 보유 여부에 관계없이 북한체제를 악의 축으로 간주, 경제 제재와 군사 행동을 통해 북한 체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가 전쟁의 위기 국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남과 북은 힘을 합쳐 이를 막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지난번 노 대통령의 방미는 이러한 남북공조의 시대적 소명을 저버리고 미국의 반핵 드라이브에 편승한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시각 모두 문제시 된다. 한미 공조와 남북 공조는 외교의 목표가 아니다. 반핵과 반전이라는 대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일 뿐이다. 더구나 한미 공조와 민족 공조는 서로 대립적 상쇄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반핵과 반전이 서로 맞물려 있듯이 이 둘은 불가분의 고리로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반핵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한미 공조는 북한을 궁지에 빠뜨리면서 한반도에 전쟁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 반면 남북 공조라는 명분 하에 반핵의 중요성을 간과한 반전 운동의 맹목적 전개는 북한의 핵 보유를 허용하는 동시에 한반도와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을 크게 해칠 수 있다. 때문에 반전, 반핵의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미 공조와 민족 공조를 동시에 조율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반핵을 목표로 한 한미 공조가 남북 공조에 우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직 검증은 안되었지만 북한 스스로 폐연료봉의 80% 이상 재처리, 핵 탄두 보유 그리고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의 개발을 시인한바 있다. 그리고 북한의 이러한 핵 보유 선언이 한반도 군사적 긴장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한미 공조를 통해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역점을 두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한미 공조의 강화가 남북 공조의 가능성을 가로막아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은 기존 채널을 통해 반전, 반핵의 한반도가 실현될 수 있도록 북한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노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한미 공조와 남북 공조라는 배타적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반전, 반핵의 지상명제를 실현함에 있어서 한미, 민족공조의 이분법적 담론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둘은 인위적으로 구분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러한 인위적 흑백 논리를 두고 좌우, 보혁으로 나뉘어 소모적 국론 분열의 논쟁에 휘말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반도를 비핵화하고 전쟁의 발발을 막는데 보수, 혁신의 구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 정 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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