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정보수집이 부실했다. 아니 어느 정도 준비를 했지만 그 정보는 대부분 틀렸다. 지난 해 수해 이후 동강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부서지고 없어진 길을 다시 잇고 쓸려가 버린 집을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분명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 산행을 시작한다고 했는데 멀쩡하게도 다리가 놓여있다. 어리둥절하다.우리나라에 백운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도처에 널려있다. 이름난 것만 따지더라도 전남 광양시, 경기 포천군, 강원 원주시, 경남 함양군 등 4∼5개에 이른다. 모두 1,000m 안팎에 이르는 고봉들이다. 동강의 백운산은 강원 정선군의 신동읍과 평창군 미탄면의 경계에 있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산이었다. 동강댐 논란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 손때가 덜 탔다.
해발 882.5m로 그리 높지 않다. 게다가 해발 300m 지점부터 산행을 하기 때문에 조금만 오르면 된다. 그러나 그 '조금'이란 말은 '조금 힘들다'는 의미도 된다. 만만치 않은 산이다.
"저 쪽으로 갈 수도 있지만 바로 이쪽에서 시작하는것이 수월하다"는 마을 아주머니의 말에 따른다. 점재마을 뒤로 경운기가 올라갈 수 있는 좁은 산길이 나 있다. 길은 길지 않다. 약 200m. 길 끝에 경운기를 돌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옆의 숲으로 발걸음의 흔적이 있는 산의 입구가 보인다. 자료에 의하면 각종 산악회의 산길 안내 리본이 수십개 달려있다고 했는데 그 곳에는 하나도 없다. '정식 등산로가 아니구나.' 걱정이 되면서도 새 길을 개척한다는 묘한 흥분을 느낀다.
계곡을 끼고 나 있는 희미한 길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덮여있다. 마을 사람들만 이용하는 지름길인 것을 직감한다. 10분 후, 길은 마른 계곡으로 들어가 사라진다. 한동안 망설였다. 그러나 다행히 숲이 빽빽하지 않다. 길을 만들며 오른다.
계속 위를 쳐다보며 걷는다. 산등성은 평이하다가 거의 수직으로 솟구치기를 반복한다. 오를 때에는 잘 몰랐는데 뒤를 돌아보면 아찔하다. 숨이 턱에 차지만 다시 내려갈 수도 없다. 약 1시간. 드디어 하늘이 보인다. 구세주를 만난 것 같다. 주능선에 올랐다. 길이 명확하다. 게다가 안내 리본도 보인다. '이제 제 길로 들었구나.'
지금까지 올라왔던 흙길이 아니다. 능선길은 완전히 돌길이다. 돌의 모양이 평범하지 않다. 면도칼처럼 위를 향해 날카로운 단면을 드러내 놓고 있다. 돌 부스러기가 돌 위에 놓여 있어 미끄럽기까지 하다. 엉금엉금 기기를 30분. 정상이 가까워진다. 그 동안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비로서 산 바깥으로 시선을 돌린다.
안개(일명 가스)가 끼긴 했지만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동강의 시퍼런 물줄기가 푸른 봉우리를 둘러 나간다. 한굽이가 아니다. 오른쪽으로 흐르던 물줄기는 다음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다시 다음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굽이친다. 사행천(蛇行川)을 실감한다.
안개가 걷히기를 바라면서 쉰다. 그러나 지루하지 않다. 백운산의 꼭대기는 완전히 나비의 세상이다. 온갖 종류의 나비가 사람의 눈길을 무서워 하지 않고 노닌다. 호랑나비, 제비나비…. 그 종류를 헤아리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후딱 간다. 그러나 1시간을 기다려도 안개는 걷힐 기미가 없다. 아쉽다.
정상에는 스테인레스로 만든 정상 표지와 돌무지만 덩그러니 있을 뿐 하산에 대한 안내가 없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갈 수 밖에. 10분 정도 내려오니 갈림길이다. 오를 때에는 보지 못했다. 안내 리본이 적은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을 아주머니가 얘기한 '저 쪽'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예상이 맞았다. 그리고 올라온 길이 '수월한길'이라는 것도 알았다. 길은 삐죽삐죽한 돌 벼랑 사이로 나 있다. 네 발로 긴다. 그런데 힘이 크게 들지는 않는다. 눈이 즐겁기 때문이다. 정상에서보다 더 조망이 좋다. 안개도 옅어졌다. 산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세상에 알려진 지 몇 년 되지 않은 이 산이 '명산' 대접을 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정선·평창=글·사진 권오현 기자 koh@hk.co.kr
● 산행법
백운산은 반쪽 산이다. 강쪽의 기슭은 모두 깎아지른 절벽이다. 힘들겠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길을 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게다가 바위가 날카로워 조심해야 한다. 진입하는 길은 크게 두 가지. 정선군 신동읍 점재마을과 평창군 미탄면 문희마을 쪽이다. 두 곳은 지리상으로는 가깝지만 교통상으로는 서울에서 대전 만큼이나 멀다.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출발지로 다시 하산해야 한다. 점재 쪽으로는 대형버스가 들어가 돌아나올 수 있지만 문희마을 쪽은 곤란하다.
점재마을 쪽은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이 다리는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는 잠수교다. 다리가 잠길 정도면 배가 다니기도 힘들다. 날씨에 유념해야 한다. 다리 왼편으로 시멘트 포장길이 나 있다. 10분 정도 걸으면 포장길이 끝나고 옥수수밭이 시작된다. 옥수수밭 왼쪽으로 산에 오르는 길이 나 있다. 전망대를 거쳤다가 정상에 오르고 다시 내려오는데 약 3시간.
문희마을 코스는 칠목령으로 올라 전망대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이다. 3시간30분. 마을로 진입하는 길이 험하다. 4륜 구동이 아니라면 3명 이상이 탔을 경우 차 바닥을 긁힌다.
● 동강 즐기기
동강에서는 볼 것, 할 것이 많다. 기왕 동강으로 나섰다면 다 경험하자.
동강의 얼굴인 어라연이 우선이다. 어라연은 영월쪽에서 진입한다. 영월역에서 태백 방향으로 500m쯤 가면 사거리이고 120도 방향에 어라연으로 향하는 언덕 길이 있다. 9.5㎞를 달리면 어라연의 입구인 거운리에 닿는다. 깔끔한 아스팔트 포장도로였지만 지난 수해에 많이 망가졌다. 특히 거운리 근처의 길은 형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대신 마을길을 우회도로로 사용한다.
거운교를 건너 10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어라연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 있다. 차를 세우고 걷는다. 약 4㎞로 왕복 3시간. 적당히 가파른 산길과 강변 모랫길, 바윗길을 차례로 지나는 아기자기한 트레킹 코스다. 어라연에 가까워지면 산 위로 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어라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르는 길이다. 가파르지만 길이 길지 않아 힘들지는 않다.
산 속의 작은 절 운중사를 찾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채 다섯명이 절을 하기도 힘들 정도로 작은 절집이다. 그러나 절 앞 뒤로 폭포가 있다. 차로 들어갈 수 있다. 거운교를 건너 계속 직진하면 절운재라는 고개. 고개를 넘으면 문산리가 나온다. 지금 어마어마한 다리를 놓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공사장 입구에서 왼쪽을 보면 언덕을 오르는 작은 비포장길이 나온다. 이 길로 약 20분 가면 절이 보인다. 숙련된 운전자만이 갈 수 있다. 래프팅을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자연보호 차원에서 문제가 됐던 래프팅은 이제 많이 정화된 단계. 자연보호 구역을 정해 놓고 있어 동강 52㎞ 중 4개 구역에서만 래프팅이 가능하다. 평창군 미탄면에 래프팅 업체가 많다. 동강레포츠(033-333-6600) 등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빠져 42번 국도를 탄다. 평창을 거쳐 미탄면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수하계곡, 진탄나루라는 이정표가 있다. 문희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왕복 1차선 시멘트 포장길이다. 약 5㎞ 진입하면 진탄나루. 래프팅 보트가 산처럼 쌓여있다. 강변길로 접어들어 비포장길을 3㎞쯤 진행하면 문희마을이다. 점재마을을 가려면 미탄면을 지나 비행기재를 넘는다. 동강을 가로지르는 광하교를 지나면 왼쪽으로 가수리라는 이정표와 평면교차로가 나온다. 아스팔트, 시멘트 포장길과 비포장 도로를 약 16㎞ 달리면 운치리. 운치리 담배가게에서부터 두 번째 다리를 건너면 점재마을이다.
머물곳
백운산 인근에는 정식 숙박시설이 없다. 모두 민박이다. 제대로 시설이 갖춰진 민박집은 수해복구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장기 투숙을 하기 때문에 거의 빈방이 없다. 평창이나 정선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것이 편하다. 문희마을 쪽으로 들어가려면 미탄이나 평창읍이, 점재마을에서 산행을 하려면 정선읍이 가깝다. 미탄면에 금광장여관(033-333-1959), 순흥여관(332-3864) 등이 있고 평창읍내에 노성장(333-4660), 태백장(333-1235), 평창장(332-3677) 등이 있다. 정선읍내에는 동호호텔(562-9000), 그림장여관(563-0521), 대왕장(563-0171) 등이 있다.
먹거리
최근 정선의 대표적인 먹거리로 떠오르는 것이 족발. 그냥 족발이 아니라 황기 등 한약재를 넣고 삶은 한방 족발이다. 정선에서는 '황기족발'이라 부른다. 향긋한 약재 냄새에 돼지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정선역 인근의 동광식당(033-563-3100), 한치식당(562-1068) 등에서 잘 한다. 평창에서는 송어를 맛본다. 물 맑은 평창에는 송어양식장이 많다. 평창읍의 평창송어장(332-0505)이 가장 유명하다. 4인 기준으로 5만원 정도면 회와 매운탕, 그리고 밥까지 먹을 수 있다. 미탄면 수하계곡에도 기화송어장횟집(332-6277), 향나무집(332-404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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