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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韓日정상회담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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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韓日정상회담에 바란다

입력
2003.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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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6일로 예정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얼마 전 부시 미 대통령의 목장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 이후에 개최되기 때문에 한국정부에 또 다른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에 건너가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의 문제나 국제정세에 대해 의견 조정을 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여러 의미에서 볼 때, 이번 방일은 한일관계가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첫째로 노 대통령은 일제 치하의 교육 경험이 없고,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세대의 새로운 정치지도자로 일본국민에게 과거와 다른 한국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과거의 연로한 대통령들과는 달리 참신하며 대중친화적인데다 "만나서 토론한다"는 식의 당당한 모습은 역대 대통령과는 다른 이미지를 일본사회에 줄 것이다.

둘째로 노 대통령은 과거에 비해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적은 20·30대 유권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안고 당선된 지도자라는 점에서 그의 이미지는 일본에 새로운 의미를 남길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몇 년 간 한일간의 빈번한 문화교류와 월드컵 공동개최 등을 통해서 한국의 젊은 층도 일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기 시작한 중요한 전환점에서 노 대통령의 방일이 이뤄지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기도 한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세계적으로 많은 이목을 끌 것이다.

한일정상의 만남은 노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한 차례 있었으나 실무적인 관계와 외교적 교섭은 이제부터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핵 포기 종용과 평화적 대북 관계를 놓고 두 정상이 미국의 대북한 기본정책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노 대통령의 지도력과 외교적 능력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회담을 통해 일본과의 공조를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부시 미 대통령과 합의한 대북 제재의 절차를 우리 정부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와 한국이 앞으로 북한에 대한 구체적 협력을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릴 것인지를 확실하게 천명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대북 정책의 질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또 문민정부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일본정부에 외교적 대가 없이 면죄부를 주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가요의 대중적 수입에 대하여 각각 면죄부를 주었다. 노 대통령은 이번에 어떤 면죄부를 줄 지 염려된다.

더욱이 일본 자민당의 정조회장이 느닷없이 "창씨개명(創氏改名)이 한국인의 자발적인 의지였다"는 망언을 하고 이틀 후에 사과하는 상투적인 해프닝도 있었다. 창씨개명은 노 대통령 개인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책임 있는 일본 정객이 이런 망언을 한 것은 그 의도가 미심쩍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노 대통령의 방일 일정에서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이 있다. 현재 50대말 이후 한국인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45년 8월 15일까지 일본국적을 갖고 있었다는 점, 내선일체 (內鮮一體)라는 슬로건 아래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치르는 동안 한국사람을 동원하였다는 점, 일본 이름을 갖지 않으면 공립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진학할 수도 없었다는 점, 우리 부모는 일본이름이 없어 심한 차별 속에서 살았다는 점 등 광복이 될 때까지 우리는 일본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윤 정 석 세종연구소 초빙학자·일본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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