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무감각한 날이다. 나른하기만 한 작업실의 불빛은 완벽하게 태연하다. 모든 것이 똑같다.인체는 하루에 10만개 이상의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낸다. 그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고 있어서, 이 지루함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런 것들은 나에겐 너무 이론적이다.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 떨어지는 마른 모래처럼 건조하고 공허하게 흐른다. 화실 안의 먼지가 서쪽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으로 반짝거리며 공중에서 움직인다. 어제까지 마음을 쏟았던 모든 일들이 의아스럽다. 이런 날은 슬픔이나 분노의 감정마저도 그립다. 작업실에서, 나는 구경꾼처럼 나를 본다. 보이는 나는, 마치 있지도 않은 자매처럼 나와 너무 비슷하다. 나는 내가 내 손아귀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듯 그녀를 붙잡는다. 우리는 둘 다 침묵하고 있다. 머리를 싸고 고민하다가 곧 지각 없는 감정에 쓸려 방자한 꼴이 되었다가는 파괴적 정열로 옮겨가는, 그런 예술가의 모습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각의 힘을 다 빼 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모순 덩어리의 어느 지리멸렬한 지점으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이런 시간엔 광기와 절망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나태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며 술에 취해 고독이나 씹는다거나 아니면 소리는 큰데 의미는 알 수 없는, 그런 이야기만 하고 있기에는 억울하다.
이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든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미래적인 기대를 주기 때문이다. 바라는 것이, 원하는 것이 막연하고 비현실적이라고 해서 그것을 버릴 수는 없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누군가가 예술가라는 사실은, 그가 온전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떠 맡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라고 했다. 운명이 나에게 장난치듯 던지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부질없이 되씹는, 그런 습관을 이제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
작업실을 나가야겠다고 결정하기도 전에 벌써 작업실을 나왔다. 도시 위에 완전한 어둠이 내렸다. 무미건조하고 빈약한, 평범하고 진부한 하루였다. 오늘은 이정도면 됐다. 그래도 나에겐 은밀한 확신이 좀 있던가? 그것이 거짓 자존심과 독립심이 아니길 바라면서….
도윤희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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