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꽤 큰 갯벌이 있습니다. 다양한 생물의 서식지이자 유해물질의 자연 정화조이기도 한 갯벌은 멀리 호주에서 철새가 날아오는 글로벌 에코 네트워크의 한 지점이기도 합니다.그런데 '당국'은 그곳을 대대적으로 간척하기로 했습니다.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도 변경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시화호 개발사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였는지를 상기시키면서 더 이상 '유기체적 신체'를 소멸시키는 일은 말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표밭의 눈치를 살피는 것에 급급한 권력자들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고, 그 와중에 갯벌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그 갯벌을 살리고자 800리 길을 쉼 없이 이어온 삼보일배(三步一拜) 순례단이 서울시청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것은 긴 순례를 마무리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조계사를 떠난 삼보일배 행렬은 타인들에게 끼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마음으로 자동차 갓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머리를 조아리며 갔습니다. 땅에게, 하늘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파괴의 인간이었음이 부끄럽다"며 뙤약볕에 지린내 나는 시멘트 바닥에 몸을 숙이며 갔습니다.
시청 광장에서 불교식, 기독교식, 원불교식, 천주교식 기도를 드린 이 행렬은 광화문 공원으로 마무리를 하러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전경들이 길을 막았고, 그들에게 분노한 몇몇 과격한 이들이 몸싸움을 하려고 했지만 '평화'가 몸에 밴 참여자들은 그들을 말리며 뒷길로, 옆길로, 폭력을 피해가며 광화문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또 한번 하늘에, 또 서로에게 큰 절을 한 이들은 조용히 삼삼오오 헤어졌습니다. 이들은 광화문 거리를 메우며 '세'(勢)를 과시할 법 한데도 스스로를 낮추었고, 청와대가 지척인데도 '쳐들어' 가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잠시였지만 나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갯벌'은 개발독재의 논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하루 아침에 없애버려도 되는 하찮은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미래세대의 삶을 내다보는 사람들은 달리 생각합니다. 나는 그곳에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전경들이 그들을 제지했을 때 삼보일배로 응하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나는 삼보일배식 순례가 조만간 생태 운동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앙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삶이 총체적으로 붕괴해가는 해체기에 대통령은 분명 '못해 먹을' 어려운 자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해결의 열쇠는 권력자들의 손에 있고, 그들이 내린 결정은 수십, 수백, 수천년간 미래 세대의 삶을 좌우할 것입니다. 개발독재 시대에 만들어진 구상을 전면 재검토하고 그 시대에 길들여진 '몸'을 바꾸어가야 합니다. 개발독재시대와 결별할 마스터 플랜을 짜는 일은 어려운 결단을 요구할 것입니다. 끊어진 실핏줄을 잇고, 감각기관을 살려내며, '공공의 목초지'를 만들어갈 때입니다.
생태환경의 시대라는 21세기에 새만금 갯벌을 아주 훌륭한 생태박물관으로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찰과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죽임'의 시대에서 '살림'의 시대로 넘어가는 길목의 진통이 너무 늘어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조한혜정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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