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황주리(46)씨의 그림은 알기 쉽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은유가 유머 넘치는 감각적 필치에 살아있다. 한 작가가 유머를 잃지 않고 쉽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가 스스로의 작업을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이다.황씨가 4∼28일 노화랑에서 24회 개인전을 열어 새로운 작업을 보여준다. 수 백 개의 안경알에 그림을 그린 설치 '안경에 대한 명상'이다. 작가의 할머니 아버지가 쓰던 돋보기와 선글라스, 눈이 나쁜 작가 자신이 써온 안경, 친지에게서 구한 안경의 알 하나하나가 캔버스가 됐다. 황씨는 그 위에 우리의 일상을 한 장면 한 장면 그려넣었다. 남녀가 만나고 사랑하고, 비오는 날 우산을 쓴 채 뒤돌아서고, 밥 먹고 버스 타고,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든 모습 등이 모두 담겼다. 일상의 서글픔과 기쁨, 탄식과 환희가 교차한다. 작가는 "이제 안경은 사람의 눈을 통하지 않고 저 혼자 세상을 보는 의인화한 존재이다. 내가 매일 매일의 도시적 삶을 그려넣은 안경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대화하며 웅성거린다"고 말한다.
황씨가 안경을 그린 것은 1991년부터이다. 폴란드 여행 길에 들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안경 무덤을 봤을 때다. "유대인들이 수용소에 들어오자마자 빼앗긴 안경을 가득 쌓아놓은 거대한 안경 무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본 그 어떤 미술 작품보다도 가장 슬픈 흔적을 지닌 가장 강력한 설치 작품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안경에 대한 명상'은 살풍경한 도시 문명의 풍자이자, 관객에게는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이다.
그의 이 작업은 2001년 뉴욕에서 전시돼 호평을 받고 2005년 맨해튼 42가 지하철역 프로젝트 설치작으로 선정됐다. 이번 전시에는 안경 작업 외에도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연작 등 대형 회화도 함께 나온다. (02)732―3558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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