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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18> "小종합상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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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18> "小종합상사" 시절

입력
2003.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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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여의도 사무실은 고작 15평이었다. 창업 멤버도 화승에서 같이 일했던 후배 P와 K, 경리, 그리고 나와 아내까지 모두 다섯 명. 무엇보다 급한 것은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었다.우연히 미국 출장 도중 코벤 형제라는 시카고의 플라스틱 인형업자와 연결이 돼 플라스틱 장난감 헬기 납품 주문을 받아냈다. 장난감에 대해 전혀 노하우가 없었지만, 뭐라도 당장 시작해야 했기에 일단 덤벼들었다.

인형공장에서 일하던 사람 한명을 기술자로 채용해 생산에 들어갔지만, 경험 부족으로 만족할 만한 물건이 나오지 않았다. 품질에 자신이 없었지만, 급한 마음에 서둘러 만들어 일단 컨테이너 6개 분량을 미국으로 실어 보냈다.

하지만 일이란 역시 서둘러서는 안 된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에 실을 꿰어 사용할 수 없듯이, 얼렁뚱땅 빨리 하는 것보다는 조금 늦더라도 확실하게 해야 결과가 좋은 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 장난감을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클레임이 왔다. 장난감 헬기의 날개가 돌지 않으니 빨리 와서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이었다. 자칫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문을 닫아야 할 판이었다.

허겁지겁 시카고로 날아갔다. 장난감 헬기의 날개와 연결된 스틸 와이어의 질이 좋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선적과정에서 와이어가 모두 꼬여 날개가 작동하지 않았다. 날개가 돌지 않은 헬기는 장난감으로서 가치가 없는 법. 앞이 캄캄했다.

장난감 헬기가 쌓여있는 창고에서 꼬인 와이어를 풀어보려고 별별 짓을 다해봤다. 그 때는 겨울이었는데, 미시건호의 바람 때문에 시카고는 미국에서도 가장 추운 곳으로 꼽힌다. 손발이 얼어붙는 것도 모르고 물 속에 와이어를 집어넣으며 생난리를 쳤다.

발버둥치는 나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코벤 형제가 나를 불렀다. "진 윤, 그만하고 이제 사무실로 들어오세요. 다시 한번 기회를 줄 테니, 이번에는 제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손해는 나중에 차차 보상하구요."

그것은 죽어가던 나의 목숨을 살려내는 한 마디였다. 만약 코벤 형제가 계속 문제를 제기하며 여섯 컨테이너 분량의 손해액을 내가 고스란히 물게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나는 사업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그냥 주저 앉았을 것이다.

가까스로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린 만큼 이번에는 품질에 최선을 다했다. 코벤 형제도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에는 품질에 전혀 문제가 없는 제대로 된 물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다시 받은 주문이 컨테이너 10개 분량. 비로소 회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난감 헬기 하나만으로는 회사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다. 칠판, 분필, 케이블 등 돈 될만한 품목이 있으면 모두 손을 댔다.

이 가운데 시카고에 있던 콜만 케이블이라는 회사의 주문을 받은 케이블은 1년도 안돼 국내 수출 1위를 차지할 만큼 효자노릇을 했다. 장난감 헬기도 1년간 컨테이너 200개 분량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런 작은 규모로는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심정이었다. 그럭저럭 현상 유지는 할 수 있었지만 회사를 안정감 있게 운영하려면 좀더 큰 사업이 필요했다.

이런 가운데 나온 것이 앞서 밝힌 대로 휠라 브랜드의 신발 사업이었다. 다행히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호머 알티스와 재정 파트너인 쌍용 미국지사 등을 연결시키는 '5자 무역'의 성사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당시 내가 에이전시로 받은 돈은 거래액의 3% 안팎. 회사가 굴러갈 수 있는 고정 수입원이 마련된 셈이다. 나는 휠라에서 나오는 돈을 토대로 끊임없이 비즈니스 개발에 들어갔다.

닥치는대로 사업을 벌였던 우리회사의 당시 별명은 소종합상사였다. 종합상사처럼 돈 될만한 것은 가리지 않고 수출을 한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사업에 조금 이력이 붙을 무렵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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