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3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삼계탕 오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6대 재벌에 대한 내부거래 조사계획을 발표한 것은 현실보다는 명분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강철규(姜哲圭) 위원장은 "경기가 어려울수록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득이 된다"며 조사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했으나, 예고된 조사를 번복할 경우 예상되는 공정위 위상 추락이 조사 강행의 주요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무뎌진 공정위 칼날
공정위는 6대 재벌에 대한 조사를 원칙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발표 내용으로만 보면 당초 계획보다 조사의 수위와 범위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난 3월 공정위가 이들 재벌에 대한 조사방침을 예고하면서, "각 그룹별로 7∼10개 기업이 조사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밝힌 것과는 달리 각 그룹별로 주요 5개 기업만을 조사대상으로 고른 것은 공정위의 조사 의지가 예전 같지 않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강 위원장도 "경제가 어려운 것을 감안해 조사 대상 회사가 과거보다 1∼2개씩 줄었다"고 밝혔다.
또 SK글로벌 사태로 뒤숭숭한 SK그룹에 대한 조사를 6월18일 이후로 조정한 것이나, 부당내부거래의 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각 그룹의 구조조정본부를 조사대상에서 제외키로 한 것도 공정위 조사의 수위를 가늠케 하는 부분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가 확보한 부당거래 혐의 중 상당부분이 지난해 공시이행 점검이나 시민단체의 제보에 따른 것으로, 관련 회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며 "실제 조사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발하는 재계
공정위의 이 같은 수위 조절에도 불구, 재계는 "모처럼 정부와 재계 사이에 화합무드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번 조사대상에 포함된 재벌 그룹의 한 관계자는 "뭔가 달라지는 줄 알았는데, 공정위 발표를 듣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물론 재계 일부에서는 공정위가 조사대상 그룹을 예상보다 축소하기는 했으나 총수 지배 구조의 핵심을 이루는 주요 계열사들이 모두 포함돼 오히려 예년보다 훨씬 강력한 조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경우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와 그룹의 자금줄인 삼성생명이 모두 포함됐으며, LG와 SK그룹 역시 LG전자·LG증권과 SK텔레콤·SK생명 등 핵심 계열사는 모두 조사를 받게 됐다. 요컨대 과거처럼 공정위가 무조건 찾아 보는 '투망식'이 아니라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정곡을 찌르는 조사를 벌일 경우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내부거래가 포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공정위는 해외 파킹된 SK(주) 지분에 대한 공정거래법상의 의결권 제한과 SK증권 및 JP모건간의 증자를 둘러싼 이중 계약 사건에 대해서는 이번 조사와는 별도로 조만간 전원회의를 열어 별도의 제재 방향을 결정하기로 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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