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공정한 시장경제 정착'이라는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이 정부출범 100일을 기점으로 성장 중시 기조로 미묘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출범 초기 개혁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재벌은 성장의 동반자로 인식되면서 법인세 인하와 수도권 규제완화 등 투자환경 개선조치가 잇따라 나오고 있고, 노조 편향적이라고 비판 받아왔던 노동정책에 있어서도 국가경쟁력이 우선할 것이라는 입장표명이 있었다.
반면 재벌개혁 조치들과 간이과세 개편 등 분배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면서도 부양 논리에 밀려 구조개혁이 퇴색하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입장이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재계 총수들과의 잇단 회동에서 투자확대를 호소한 데 이어 2일에도 "대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으면 어떤 부양책도 효과가 없고, 국가경제도 살아나기 힘들다"고 강조, 대기업 정책에 대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실제 정부는 4일 참여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수도권 공장증설을 위한 규제완화 등 각종 투자환경 개선을 위한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그동안 청와대는 법인세 인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를 확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수도권 규제완화는 지역균형발전·환경개선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미온적 입장을 보여왔다.
반면 재벌개혁 조치들에 대해서는 지난달 정부내에 태스크포스가 꾸려졌지만, 출자총액제한 예외규정 축소는 재경부 등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상태이며 금융계열 분리청구제도 장기과제로 밀렸다.
분배정책과 관련해서도 최근 청와대가 빈부격차·차별시정 태스크포스에서 세정개혁 조치들을 발표했지만, 고소득자 과표 양성화를 위한 고액현금거래 보고제와 간이과세자·납부면제자 비중을 축소하는 간이과세 개편과 관련한 법 개정은 내년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세정개혁 방안이 재경부 등의 반대로 지체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이 같은 코드 변화는 경제상황이 예상외로 악화하기 때문.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는데도 성장률은 3%대에 그쳐 분배와 성장, 두마리 토끼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때문이다. 경제부처 고위관계자는 "성장을 멈추면 분배도 불가능한 소규모 개방경제의 한국적 특수성을 청와대가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남미식 '저성장-분배악화 체제'의 덫에 빠져들기 전에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보다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심상달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경제상황을 볼 때 분배 중심의 정책기조가 성장으로 선회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면서도 "그러나 경기가 나쁘다는 이유로 기업들에 대해 봐주기식으로 일관한다면 오히려 성장잠재력을 갉아먹을 수 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 구조개혁·시장개혁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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