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소설은 대체로 고통스럽다. '성(城)' '변신' 등 대표작은 그의 생애, 그가 살았던 시대만큼이나 스산하고 음울하다. 체코 프라하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는 늘 아웃사이더 같은 갈등과 소외감이 따라다녔다. 소설 쓰기는 41세 생애의 유일한 탈출구였을 것이다.'변신'은 상상력과 리얼리즘이 정교하게 결합된 소설이다. 세일즈맨 그레고르는 어느날 깨어 보니 자신이 큰 갈색 곤충으로 변해 있다. 처음에 당황하고 슬퍼하던 부모와 누이는 날이 갈수록 주인공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느낀다. 그는 외부와 차단된 채 자기 방에 유폐되고, 그 방은 점차 창고로 변한다. 식구들의 분노와 절망이 극에 달했을 무렵 그는 거식증세 속에 죽음을 맞고, 식구들은 기분전환을 위해 소풍을 떠난다.
변신으로 인해 주인공과 가족은 극심한 괴로움과 절망을 겪고, 고통은 독자에게도 전이된다. 부조리한 세상에 던져진 인간의 고독과 절망을 주제로 문학작업을 한 카프카는 카뮈, 사르트르를 앞서간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무람없게도,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행적을 보며 '변신'을 떠올리게 된다. 볼품없는 번데기에서 화려한 성충으로 바뀌는 나비같이 아름다운 변신도 있다.
하지만 갈피를 잡기 어려운 대통령의 변신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씩씩하던 대통령이 얼마 전 별안간 나약하고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다.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자 어느 장관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은 가까운 사람에게 인간적 감정을 토로한 것인데, 이를 가십이 아니라 신문 1면이나 TV 뉴스의 머릿기사로 다루는 것은 균형감각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렇다. 대통령도 때로는 가까운 이에게 하소연을 할 수 있다. 이를 중요 기사인 양 정색을 하고 개탄한 것은 언론의 선정주의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방미 기간에 보인 대통령의 미국 예찬은 과격한 변화였다. 뜻밖이었다. 대등한 한미관계 주창자였던 그가 과공(過恭)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한 예가 " 53년 전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을 것" 이라는 발언이다. 그러나 이 또한 미국 측의 '사상검증'을 의식하고, 또 북의 지독한 인권문제를 우회해서 비판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감안하더라도 일련의 발언은 정체성의 흔들림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과공은 피하고 우호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자신과 정책에 대한 오해가 있으면 겸손하되 당당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을까. 첫 방미한 문화충격 때문에 그렇게 주눅이 들었을까. 평소 견지하던 민족 우선보다 한미동맹 우선을 애써 강조한 것, 자주 외교에서 저자세로의 급선회 등 일관성 결여가 국민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일제히 추락한 것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변신은 당혹스러웠다. 카프카 소설에서 곤충으로의 변신은 많은 생태학적 연상과 문학적 비유를 떠올려 준다. 사람은 뼈대가 몸 안에 있고, 곤충은 몸 거죽에 있다. 물렁한 사람의 살은 위험에 노출되어 많은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대신 근육화함으로써 저항성을 높여간다. 반면 딱딱한 뼈대가 거죽에 있는 곤충은 방어에 유리하지만, 일단 껍데기가 뚫리면 피해는 치명적이다.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보호해 주던 껍데기가 뚫려 급기야 치명상를 입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곤충에게는 또 다른 단점이 있다. 딱딱한 키틴질 때문에 곤충은 생존에는 유리했지만, 좀더 고등한 동물로는 진화하지 못했다. 외부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대신, 안전한 키틴질 속으로만 움츠러든다면 발전이나 진화에도 한계가 있다. 대통령의 정치적 미래, 국가의 장래도 유사하리라고 생각한다.
박 래 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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