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강신화의 환희와 붉은 물결이 한반도를 뒤덮었던 2002년 6월. 그때의 감동은 여전히 가슴속 깊이 남아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프로축구 경기장은 썰렁하기 짝이 없다. 4강신화는 '반짝 열기'로 끝난 셈이다. 국내 상황은 이렇지만 4강신화의 주역 거스 히딩크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의 고향 네덜란드는 춘하추동 축구 열기로 가득하다. 단순한 열기만이 아니다. 보는 데 만족하지 않고 남녀노소가 직접 참여하는 일상의 일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3회에 걸쳐 네덜란드 선진축구 현장을 정밀 진단하고 이를 통해 한국축구의 진로를 모색해본다.
지난달 24일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무역항인 로테르담 시내 중심의 페예노르트팀 연습장. 1,000명이 넘는 팬들이 몰려와 경기장을 둘러싼 철망에 매달려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관전'하느라 여념이 없다. '태극전사' 송종국(24)을 비롯한 선수들이 슛을 날릴 때마다 환호와 탄성이 터져나왔다. 훈련이 끝나자 팬들은 선수들에게 사인공세를 펴고 사진촬영을 하는 등 북새통을 이뤘다.
'애인 보다 축구가 더 좋아요'
지난해 6월 월드컵 경기장 밖에서 팬들이 태극 전사들을 보기 위해 몰려들던 모습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오늘은 연습을 보러 온 관중이 적은 편이예요." 페예노르트 관계자의 퉁명스런 말을 듣곤 또 한번 놀랐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축구는 공적인 업무 외에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 사람들은 애인 보다 축구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PSV아인트호벤에서 활약중인 '초롱이' 이영표(26)도 이렇게 귀띔했다.
실제로 경기가 없을 때 홈팀 연습장을 찾는 팬을 쉽게 찾을 수 있고, 학교나 직장에서의 화제도 축구가 압도적이다. 직장에서 여성들이 전날의 축구경기 내용을 분석하며 흥분하는 모습도 흔하다. 한일월드컵에서는 본선진출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늘 세계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는 네덜란드 축구가 강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장면들이었다.
국민 15명중 1명은 축구선수
이뿐이 아니다. 네덜란드는 '축구선수 투성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네덜란드 인구는 약 1,500만명. 이중 102만명이 정식선수로 왕립축구협회(KNVB)에 등록돼 있다.
이들은 6개 지역별로 활약중인 클럽들에 소속돼 있고 90% 이상은 유소년 선수(18세이하)들이다. 때문에 세계 축구계에서는 "네덜란드 축구의 미래가 더 밝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빈 하리 KNVB 사무총장은 "네덜란드 축구가 강한 이유는 각 클럽별로 잘 갖춰진 유소년 시스템과 지도자 양성시스템 덕분"이라며 "네덜란드에서 축구는 경기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빅리그의 징검다리
네덜란드 프로축구는 유럽 빅리그의 '징검다리'로 불린다. 그 근저에는 역시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해 온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올 시즌 43골을 터트린 '득점기계' 루드 반 니스텔루이(27·맨체스터 유나이티드). 93년 네덜란드 2부리그 덴 보쉬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그는 PSV아인트호벤을 거쳐 2001년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며 '오렌지 군단'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호나우두(27·레알 마드리드) 역시 유럽으로 건너와 첫발을 내디딘 곳이 네덜란드다. PSV아인트호벤에서 94년부터 2년간 뛰면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빅리그 스카우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브라질의 노장 호마리우도 88년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 공항까지 달려온 히딩크 감독의 구애로 PVS아인트호벤에 입단, 팀을 3차례나 우승으로 이끈뒤 스페인리그로 진출했다.
빅리그의 젖줄역할을 하고 있는 네덜란드리그는 1부리그(이러디비지·Eredivisie)와 2부리그(이르스테디비지·Eerstedivisie)로 나뉘어 각각 18개 팀으로 구성돼 있다.
/암스테르담 로테르담(네덜란드)=박희정기자 h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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