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노동자편에 서 있다는 것이 각인이 돼 선입견을 벗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지만 나에 대한 불안감 해소를 위해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며칠 전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자신을 둘러싼 국민적 불안에 대해 이처럼 답한 것으로 언론은 전하고 있다.이 보도를 접하는 심정은 양면적이다. 우선 다행스럽다. 국민들이 자신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 대통령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걱정스럽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이유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인식이 너무나 현실과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을 풀어보면, 자신은 노사 양측 사이에서 공정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자신이 친노동자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국민들이 가지고 있어 그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불안감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참여정부가 지금보다 보수적 방향으로 우경화해 국민들의 선입견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처방에 이르게 된다.
물론 일부 수구언론들이 철도노조 문제, 화물연대 문제의 해결방식 등과 관련해 노무현 정부가 지나치게 친노동자적인 것처럼 선정적으로 보도하며 국민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생각대로, 국민들이 노 대통령이 너무 친노동자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생각해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인가? 천만에 말씀이다.
왜냐하면 노 대통령의 생각이 맞다면, 최소한 노동자들과 진보, 개혁세력은 노 대통령에 대해 불안해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진보·개혁세력도 보수·수구세력 못지 않게 노 대통령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고 국민 불안감의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노 대통령의 친노동자성이나 이에 대한 선입견때문이 아니라 널 뛰듯 하는 정책적 비일관성이다. 즉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정책이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는 과연 국정철학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럭비공처럼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뜨거운 감자인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다. NEIS에 대해 참여정부가 얼마나 자주 말을 바꾸고 갈팡질팡해 왔는가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사실 NEIS의 처리 과정을 보면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 비정상이다.
안타까운 것은 윤덕홍 부총리가 평소 국가인권위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말해왔고 인권이 중요한 것이므로 국가인권위가 NEIS의 3개 영역에 대해 인권침해 결정을 내렸을 때 인권을 생각해 국가인권위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으면 간단히 해결됐을 문제를 왜 엉뚱하게 대응해 평지풍파를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즉 노 대통령이 "시스템을 폐기해야 한다는 단정적 권고는 심한 것 아니냐"고 국가인권위 결정에 반발하며 NEIS 강행의사를 표명했다가 전교조와의 협상을 통해 NEIS 유보결정을 내림으로써 전교조에 밀려 원칙을 버렸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그리고 교총 등 보수적 교육단체들이 반발하자 다시 결정을 번복하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국가인권위 결정에 대해 잘못 대응해 사태를 이처럼 몰고 간 데에는 윤 부총리인지 아니면 청와대 관련참모인지 모르지만, 인권 침해우려가 있는 3개 영역을 제외하라는 인권위의 결정을 NEIS를 폐기하라는 뜻인 것처럼 노 대통령에게 엉뚱하게 보고해 대통령의 판단을 흐린 누군가의 잘못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NEIS같이 갈팡질팡하는 행정을 예방하고 국민들의 불안감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잘못된 보고의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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