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부터 실시된 영재교육이 과열로 치달으면서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올 초 부산에 과학영재고가 문을 연 이후 영재교육 붐이 일면서 대형 사설학원들이 경쟁적으로 영재반을 편성, 학부모들을 유혹하고 아이들에게 영재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있다. 한 학부모는 "학원에서 운영하는 영재반에 등록하려다 학원비가 과목당 최소한 50만원이라는 것에 포기했다"고 말했다.또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영재교육 확대를 위해 영재교육원 이수자 가운데 영재성이 탁월한 학생을 2004년부터 과학고 정원의 10% 내에서 정원 외 입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혀 영재교육이 과학고 입학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마저 제기된다.
어떻게 판별하나
자녀가 또래 아이보다 말이나 글을 빨리 배우거나 특정한 분야에 재능을 보이면 부모는 '혹시 우리 아이 영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영재는 특정 분야에서 잠재력이나 성취도가 뛰어난 정규 교육과는 다른 특별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학생이므로 단순히 말과 글, 산수를 잘한다고 해서 영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의 경우 일반적 지능과 학문적 적성 이외에도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사고, 지도력, 시각 및 공연예술, 정신운동 능력 등을 영재성에 포함하고 있다.
미국 영재교육의 대부인 미국 국립영재교육연구소 조지프 렌줄리(코네티컷대 교수) 소장은 "영재는 지능, 창의성, 과제 집착력 등 세가지 영역에서 모두 상위 15%안에 들면서 그 중 한가지는 상위 2%안에 들어야 한다"고 정의한다.
영재성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아이의 몇 가지 행동만을 보고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러나 일부 병원이나 사설 영재학원 등은 부모의 기대에 편승, 영재 판별 기준을 무원칙하게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황과 문제점
현재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영재학교로 지정된 곳은 올해 문을 연 부산과학영재학교 뿐이다. 하지만 영재교육을 담당하는 곳은 적지않다. 전국 초중고교에 설치된 영재학급과 서울대 등 전국 15개 대학 부설 과학영재교육원, 시·도교육청이 고교 등에 위탁 운영하는 영재교육원 등이 대표적.
교육인적자원부는 초중고교의 영재교육 대상 학생을 크게 늘리고 교육 분야도 확대하는 내용의 영재교육진흥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현재 전체 학생의 0.1%선인 1만명 정도를 대상으로 하는 영재교육을 2007년까지 0.5%선인 4만여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일선 초중고교에 설치돼 있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인 영재학급도 현재 36곳에서 170여곳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영재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등 영재교육이 벌써부터 비틀거리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영재교육 담당 교사 가운데 관련 연수를 받은 사람은 10%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영재교육기관에서 학업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으며 학습자료가 부족해 선행학습이나 경시대회 준비 수준의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재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제대로 된 영재교육 교재가 없다는 것이다. 영재교육 전문가인 우종욱 전 한국교원대 총장(창의력교육학회장)은 "창의력이 영재교육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세계의 대표적인 영재교육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라며 "영재교육 및 평가는 무엇보다 창의력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교육부 등에서 내놓은 영재교육 프로그램은 창의력을 발전시키는데 아주 미흡한 실정이다. 우 전 총장은 "학부모들도 현재 각 대학이나 사설학원에서 하는 영재교육에 무비판적으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자녀가 어떤 부분에 능력이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재학교에 들어가거나 영재학원에 6개월이나 1년을 다녔다고 해서 영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렌줄리 소장은 "영재 교육은 지식을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풀어내는 학업영재성이 아니라 지식을 변형해 새로 창출하는 창의적 영재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충고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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