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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 고글 쓴 산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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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 고글 쓴 산신령

입력
2003.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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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사냥광 태조 이성계가 신하들을 데리고 한양 동쪽으로 사냥을 나섰다. 어느 산에 이르러 몰이꾼들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가며 열심히 활을 쏘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다. 군주의 이런 허망한 성적은 바로 통치의 위기로 연결되는 게 신생 국가의 운명이다. 그걸 잘 아는 태조가 산신령 탓을 하며 바로 제사를 올렸다. 그런 연후에 바로 멧돼지를 잡았다고 한다. 정말 멧돼지를 잡았는지 이미 잡은 멧돼지를 누가 갖다 놓은 건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그 후로 그 산은 태조가 제를 지냈다 하여 축령산(祝靈山)이라 불렸다고 한다.지난주 영문도 모르고 누군가의 말만 듣고 남양주시에 위치한 이 산자락을 찾았다가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기이한 이름의 산을 찾아가는 길은 평탄치 않았다. 몇 번씩 길을 잃으면서 운전자이자 지도자이며 가장인 내 권위는 바닥을 모르게 추락하였으니, 야박해라 근대여, 길 못 찾는 소설가는 탓할 산신령도 없구나. 탄식은 오래 가지 않았다. 민박집 주인이 멧돼지 바베큐를 차려주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산신령은 오클리 고글을 쓰고 있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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