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한 한국인이 급한 나머지 미국 경관에게 'See me once!'라고 했더니 'No soup!'라는 대답과 함께 꼼짝없이 딱지를 떼이고 말았다." '한번 봐달라'는 말에 '국물도 없다'는 답을 '콩글리시'로 표현한 우스갯소리이다. 법 위반에 대한 한국형 호소와 이런 민원이 통하지 않는 미국형 '법대로'를 대비한 개그였다. 뉴저지 주에서 운전면허 시험을 봤을 때 '안전벨트를 왜 매야 하는가'라는 사지선다형 문제의 정답이 '생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법이기 때문'이라고 해서 인상적이었던 적이 있다.■ 정부 출범 초부터 언론과의 긴장관계를 강조해 오던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언론을 향해 "봐달라"라는 말을 여러번 했다. 자신이 투자했던 생수회사 장수천과 형 건평씨 부동산투기 의혹을 해명한 기자회견에서, 그리고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석상에서였다. 이어 어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또 그랬다. 그러나 앞의 두 번과 어제는 의미가 또 다르게 들렸다. 앞의 두 번은 이랬다. "누구라도 죄 지은 일이 아닌데 이름이 오르내리기를 누가 원하겠습니까. 제 사정도 그것 쯤은 한 번 봐주십시오." "저도 인간이지 않습니까‥봐주십시오. 더는 못 견디겠습니다."
■ 노 대통령 특유의 호소형 화법이자, 전형적인 한국형 읍소의 뜻이 담긴 말이었다. 또한 약자인 듯한 입장으로 감성을 정면으로 드러낸 그다운 표현이었다. 부동산의혹 뿐 아니라 지난 100일 간의 피로와 괴로움이 엿보이기도 했다. 해석에 따라서는 적대적이라고 간주하던 주변환경에 대해 인식과 대처의 변화가 오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적어도 당당한 대응을 독려하던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반면 어제의 같은 말에는 항의와 역공의 뜻이 더 진하게 풍겼다. 의혹에 대한 질문에 한껏 격앙돼 공격적 항변을 한 뒤에 나온 말이기에 특히 그랬다. 며칠 전 오찬 때 한 말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서 한 얘기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확대해석의 여지는 없어진 셈이다.
■ 뉴욕 타임스는 최근 노 대통령이 형의 부동산과 자신의 사업스캔들에 대해 정치적 생명을 걸고 분투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의혹들이 지금처럼 확산된 것은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인식이 대통령 주변을 보는 국민의 상식적 인식과 괴리를 보이는 데서 악화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어제 회견에서 "잘못이 있다면 조사해서 처벌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법대로' 할 일이지 의혹으로 다룰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지만, 앞서 '봐달라'고 했던 것과는 어딘가 다른 뉘앙스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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