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두 이야기꾼이 만났다. 봄날 아침마다 유쾌한 이야기로 미소를 머금게 했던 소설가 성석제(43)씨와 그 이야기의 바통을 이어받아 2일 연재를 시작한 소설가 김영하(35)씨. 두 작가는 5월30일 광화문 거리에서 '인수 인계식'을 가졌다.김영하 '길 위의 이야기'를 연재한다고 했더니 유하(시인·영화감독) 선배가 만만치 않을 거라고, '내상'을 각오해야 할 거라고 했어요. 신문에서 이런 형식의 연재물은 본 적이 없는데 성 선배가 처음이죠?
성석제 처음 '시 읽기' 정도로 하자는 제안을 받았지(그는 시로 등단했다). 시를 안 쓴 지도 오래됐고 해서 아주 짧은 콩트를 연재했으면 했지. 새로운 글쓰기여서 처음에는 좀 힘이 들었지만 곧 익숙해 지니 너무 걱정할 것 없어. 소설에 써먹을 에피소드를 따로 챙겨놓아야 한다는 것 명심하고.
김 그래도 내 이름으로 신문에 실리면 '저작권'이 확보되지 않을까요? 한국일보 몇월 몇일자 '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에 나왔다, 이러면 다른 사람이 쓰기 어렵잖아요.(웃음)
성 연재 중엔 늘 열 편의 이야기는 여분으로 갈무리하고 있었어. 그렇게 '예비군'을 두고 있어야 어렵지 않아. 막판엔 예비군을 다 동원하긴 했지만….
김 정희성 시인의 시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중에 '발표 안된 시 두 편만/ 가슴에 품고 있어도 나는 부자다'라는 구절이 있죠. 소설가는 발표 안된 단편 두 편만 갖고 있어도 부자일 텐데, 나는 늘 가난하다니까요. 요즘엔 정말, 소재 찾는다고 길을 가다가 간판도 유심히 보고, 예전에 언뜻 들었던 얘기도 기억해 내려고 애써요.
성 간판이라…. 그러고 보니 '낮이나 밤이나'라는 술집이 있더라. 간판을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여관 이름이 '장급 여관'인 것도 있었다. 그런 것 모아 쓰면 재미있겠다. 사실 내 얘기 중엔 술자리에서 들은 게 많았는데 연재할 때는 마음껏 술마시지 못해서 괴롭더라. 재미있는 얘길 들으면 어디에 적든지 외우든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지. 오늘은 마음 편하게 마셔야지. 막 단편 끝냈거든. 김정환(시인) 선배와 만나기로 했다.
김 단편 한 편 쓸 때마다 김정환 선배와 술 마시나요?
성 그랬으면 소설집 백 권은 냈겠다.
김 나도 선배처럼 얘기 들려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으면 좋을 텐데. 다들 내 얘기를 들으려고만 해서요(그는 입담 좋기로 소문난 작가다). 저한테 넘겨줄 얘기는 없나요?
성 음…. 이건 사실 어디선가 읽은 거라 직접 써먹긴 뭐한데…. 차를 굉장히 천천히 모는 여성 운전자가 있었는데 뒤에 가던 남자가 어찌나 열을 받았던지 소리를 질렀다는 거야. "아줌마, 밥이나 하지 뭐 하러 나와요!" 그랬더니 그 여성이 "쌀 사러 왔다"고 그러더래.
김 나도 비슷한 얘길 들었는데 길에서 여성 운전자가 그랜저를 아주 천천히 몰더래요. 뒤에서 액센트를 운전하던 남자가 화가 나서 소릴 질렀더니 그 여성이 차를 돌려서 액센트를 들이 받았다나요. 그러고선 전화를 걸어서 하는 말이 "박 비서, 액센트 하나 사와." 어, 이거 진짜 '길 위의 이야기'지요? (성석제씨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전해주었고 김씨는 수첩을 꺼내 메모하면서, "먼저 연재한 선배가 뒤를 잇는 후배에게 이야깃거리를 전하다니 정말 아름다운 풍경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성 음식을 소재로 쓸 때는 독자 반응이 특히 즉각적이더라. 젊은 사람들은 명품에 관한 글도 재미있어 하고. '명품 짝퉁'에 관한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아는 사람이 '짝퉁 명품 가방'을 샀는데 가방끈 끝 부분이 약간 닳아 있더래. 그런데 외국 사람들이 보고는 얼마나 오래 써서 이렇게 됐냐고 하더래, 국내 짝퉁 제조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김 아는 분이 짝퉁 명품 스니커즈를 신고 명품 매장에 들어갔대요. 매장 직원들이 그분이 신은 스니커즈를 보곤 태도가 달라지더래요. 짝퉁인데 말이죠… 음, 그러고 보니 쓸 거리가 꽤 있겠군요.
성 연재를 잇는다는 얘길 듣고 기대가 되더라. 말도 잘하고, 유행에도 민감하고, 새로운 것에 관심도 많고. 이제 연재를 넘겼으니, 나는 마음 편하게 장편 낼 거 손 볼 참이다.
김 부담 돼요. '길 위의 이야기' 를 쓰기로 정하고 나니 '길 위'를 마음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없다니까요. 저는 지금 조선 말기 멕시코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쓰고 있는데, 아직 배에서 내리지도 못했어요(웃음).
/정리=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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