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A(49)씨는 1990년대말 영국에서 2년동안 유학을 하는 동안 20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한 갑에 7,000∼8,000원하는 담뱃값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나라에서는 담뱃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담배를 한 개비 얻어 피우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보건복지부가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의 담배규제기본협약 채택을 계기로 담뱃값을 선진국의 30% 이상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발표, 찬반 양론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김화중 복지부 장관은 "담배규제기본협약은 담배소비억제를 위해 가격과 세금정책을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면서 "선진국 담뱃값이 1만원정도 하는 것을 감안하면 평균 3,000원 이상은 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국무회의 석상에서도 "20%의 흡연억제 효과"가 있다며 담뱃값 대폭인상을 주장, 장관들간에 논쟁이 붙기도 했다.
1,000만명 이상이 담배를 피우는 국내 실정상 담뱃값 인상은 대단히 예민한 문제다. 더욱이 한번에 50∼100% 인상이 이루어질 경우 흡연가들의 저항은 불을 보듯 뻔한 게 현실. 장관의 발언이 있은 뒤 복지부 홈페이지나 담배를 생산·판매하는 KT&G(구 담배인삼공사)의 인터넷 여론마당, 언론사 사이트 등에서 네티즌들의 찬반 논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흡연가 단체와 금연단체도 "흡연가가 봉이냐" "3,000원으로는 미흡하다"며 맞서고 있다.
담배소비자보호협회 홍성용 홍보팀장은 "합법적인 상품을 합법적으로 사서 피우는 게 무슨 죄냐"면서 "담배소비자를 위한 대책이 없는 한 세금을 통한 담뱃값 인상은 절대불가"라고 밝혔다. 일부 애연가 네티즌은 "복지부를 해체하라"는 등의 격문성 글을 올리기도 했다. 더욱이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에서도 담뱃값 대폭 인상시 물가 악영향이나 세수 감소 등을 우려하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금연운동을 주도하는 한국금연운동협의회측은 "담뱃값을 3,000원으로 올릴 경우 흡연자중 35%가 담배를 끊겠다는 응답을 했다"며 "선진국 수준인 1만원까지 올려 흡연인구를 15% 수준까지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표적 금연전도사인 국립암센터 박재갑 원장은 "담뱃값 인상에 대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나 지방세 축소문제를 언급하며 정부 일각에서 반대하는 것은 담배를 기호품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이 깔려 있다"며 "담배는 대마초보다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며 1만원 이상의 고강도 가격정책으로 금연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격을 통한 금연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까. 복지부가 고려대 이원년 교수팀에 의뢰, 담배 가격인상에 따른 금연효과를 분석한 결과 담뱃값을 10% 인상할 경우 담배수요 감소는 2.7∼7.1%, 100% 인상할 경우 수요 감소는 1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담배가격조절을 통한 담배소비억제 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입장이다. 1999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조사결과에서도 담뱃값을 10% 인상할 경우 선진국은 4%, 후진국과 개도국은 8%정도의 담배수요 감소가 나타나는 것으로 돼있다. 특히 청소년은 성인보다도 더 감소효과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담배를 생산판매하고 있는 KT&G 측은 "담뱃값 인상을 통한 금연정책은 일시적 감소효과 밖에 거두지 못할 것"이라면서 "복지부가 단순논리로 접근하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건강증진기금이 2원에서 150원으로 인상된 지난해 7%, 담배소비세와 교육세 등이 120원정도 인상된 2001년 5.7%씩 담배수요가 줄어들었으나 인상전 소매점 등의 담배사재기를 감안하면 실제 수요억제효과는 미미하다는 분석이다.
요요현상도 논란거리. 이주일씨 폐암 사망을 계기로 폭발적인 금연붐이 일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다시 흡연인구가 늘어나는 이른바 '요요현상'이 나타난 사실로 볼 때 가격을 통한 금연정책은 미봉책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인상된 담뱃값을 벌기 위한 사회적 일탈행위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흡연율 美·英의 2배 / 年 사회적 비용 2조∼6조원
국내 흡연인구는 약 1,05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20세 이상 성인 남성은 약 65%, 성인 여성은 5% 정도가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인남성 흡연율은 미국 27.6%, 영국 29% 등으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특히 국내 청소년의 흡연율은 대단히 높다. 2000년 한국 남자 고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흡연율은 무려 38.5%로 나타나 일본 8%, 호주 16% 등 세계 각국의 비슷한 또래에 비해 대단히 높다.
흡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도 엄청나다. 연세대 보건대학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01년 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2조7,000억∼6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흡연으로 인한 손실은 술로 인한 손실보다 2∼3배정도 더 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폐암으로 인한 사망자도 한해 5만명에 근접했다.
■ 국내 담뱃값 수준은
당장 내년 중에 국내 담뱃값을 선진국의 30% 수준인 갑당 3,000원 이상으로 인상할 경우 우리나라 경제수준에서 적정한가가 논란이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담배가격이 선진국에 비해 싼 것은 사실이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각국의 담뱃값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디스담배는 1.25달러(약 1,500원)로 미국(4.6달러) 영국(6.5달러) 프랑스(4달러) 등 선진국 주력 제품 가격의 20∼3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각국 평균 담뱃값 통계를 보더라도 한국(1.26달러)처럼 1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이탈리아(1.93달러)와 포르투갈(1.77달러)에 불과하고 대부분 3∼4달러이다.
그러나 국민총생산, 근로자 임금 등 경제수준이 다른 만큼 절대 가격비교만으로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낮은 담뱃값을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WHO 통계에 따르면 미국 제품인 말보로 1갑을 벌기 위한 근로자 개인의 노동시간을 따질 때 한국의 담뱃값은 선진국 최고 수준에 가깝다. 한국 근로자가 말보로 1갑을 사려면 26.6분을 일해야 하나 독일 미국은 10분대면 되고 일본은 8.9분에 불과하다. 영국 노르웨이만 우리나라보다 높을 뿐이다. 담배에 붙는 세금 역시 선진국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WHO가 조사한 한국의 담배가격 대비 세금비율은 60%. 대부분의 선진국은 70%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KT&G에 따르면 디스는 1,500원 가운데 담배소비세, 건강증진기금 등 세금은 71%(1,065원)이다. 만약 복지부가 계획대로 150원인 건강증진기금을 1,150원으로 올릴 경우 부가가치세(10%)까지 덩달아 올라 담뱃값은 2,700원 정도가 된다. 담배원가가 430원이므로 세금 비율은 85%까지 올라가 세계 최고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담배가격은 어떨까. 조사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조사한 2000년 기준 담배가격 국제비교에 따르면 1인당 GDP 대비 담뱃값은 한국을 100으로 봤을 때 영국(263) 프랑스(150)보다는 낮지만 미국(81) 일본(55)에 비해서는 오히려 높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상대가치를 통한 비교에서도 한국의 담뱃값은 선진국 수준에 비해 대체로 낮은 수준이지만 가격에 대한 단순비교 수치만큼 떨어지지는 않는다. 내년도에 담뱃값을 3,000원 수준으로 대폭 인상할 경우 상대가치가 선진국 최고수준이 될 것으로 보여 담배 소비자들의 큰 저항이 예상된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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