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 한 분을 만났다. 그런 분들은 뭘 가지고 다니나 늘 궁금했기 때문에 그 분이 꺼내는 모든 물건에 눈이 갔다. 그런데 그 분 주머니 속에선 좀 희한한 것이 튀어나왔다. 내가 이런저런 책 이야기를 하자 그걸 메모하려고 꺼낸 것인데 그 옛날 장바닥에서 일수 걷으러 다니는 분들이나 가지고 다닐 법한, 대학노트를 손바닥 만한 크기로 줄인 듯한 모양의 지극히 평범한 수첩이었다.스프링이 없어 양복 주머니에 넣어도 불룩해지지 않고, 값이 싸서 잃어버려도 아쉽지 않으며, 아무 데에서나 꺼내서 뭘 적기에 편하다는 게 그 분의 말씀이었다. 내가 자꾸 탐을 내자 그분이 그것을 살 수 있는 가게를 알려주었다.
다음 날 가서 물어보니 한 권에 300원이었다. 날름 열 권을 샀다. 그래 봐야 짜장면 한 그릇 값이었다. 두 권은 내가 쓰고 나머지 여덟 권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껌 한 통 값도 안 되는 수첩이었지만 사람들은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거개가 여러 분야의 저자인 그들이 멋진 것을 적어 책으로 묶어 내게 돌려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값싼 투자, 단돈 300원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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