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 지음 이가서 발행·9,000원나마스떼. 인도 문화권에서 "안녕하세요"라는 뜻으로 나누는 인사말. "당신에게 깃들어 있는 신께 문안 드립니다"라는 의미가 담긴 말. 소설가 전경린(41·사진)씨가 여행길에서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전경린씨의 첫 산문집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는 네팔 여행기다. 그는 지난해 12월 네팔로 떠나 한 달 여 머물렀다. 매우 지쳐 있었고 종종 새벽 4시에 잠깨곤 하던 때였다. 역겨운 기내식을 먹으면서, 마구 흔들거리는 비행기를 타고 초라한 네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국민소득 210달러. 한국의 2%다. 네팔 시간 새벽 4시에 전씨는 호텔방에서 잠을 깬다. 그는 2,700여 개의 사원을 품은 성지 카트만두에 있다.
쿠마리 사원에서 다섯 살 난 여신을 만났다. 집안, 전생의 기억, 용모, 건강, 신성 등을 까다롭게 따져서 선출된 여신이다. 쿠마리 여신의 가족은 나라로부터 생활비를 받으면서 살 수 있다. 선출된 성녀는 사원에 유폐돼 살아있는 여신으로서 예식을 행하며 신성한 생활을 한다. 성녀의 삶은 첫 생리를 할 때까지다. 다시 평범한 여자로 내쳐진 한때의 성녀들은 세속의 생활에 섞이지 못해 자폐와 망상에 시달리곤 한다. 성녀로 선택된 순간, 길고도 오랜 불행의 시간을 함께 부여받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적막한 유폐와 생의 박탈을 만나곤, 서늘한 귀기를 몸에 담아둔다.
마흔이 넘은, 두 아이의 어머니인 작가의 마음에 좀 더 와닿는 것은 이국 땅 평범한 여인들의 삶이다. 작은 빨래바구니를 끼고 슬리퍼를 끌면서 흙길을 걷는 여인들을 보면서 그는 탄식 소리를 듣는다. "살아지지가 않아요. 정말 살아지지가 않아서 그래요….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으니 내가 전원을 꽂고 살아주는 가전제품 같기만 해요. 세탁기처럼, 냉장고처럼…."
포카라의 훼아 호수로 간다. 부처의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으로 간다.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고민을 안고 온 소설가는 네팔에서 쉽게 답을 구했다. "내가 상자 안에서 나오지 못했던 것은 상자 안의 삶을 바라보고, 돌보고, 구해내야 하는 더 큰 '나'가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꺼풀을 열고 고요히 나를 볼 것. 그러면 나는 어느 사이 상자 바깥에 있을 것입니다." 작가는 삶을 회피하지 않고 샅샅이 복무하도록 무릎을 꿇려 달라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제 몫의 공포를 뚫고 지나가게 해달라고, 어머니로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보살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한다.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여행도 삶 속에서 되풀이된다." 여행은 익숙했던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만나는 길이다. 나마스떼, 라는 인사말을 들으면서 자신 안에 깃들어 있던 신을 만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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