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구니오·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김춘미 옮김 현대문학 발행·9,000원"왜 연애소설을 쓰기가 어려워졌을까요. 예전의 연애소설이 그려낸 것 같은 고양된 정열이 불가능해졌고 현대인이 자기분석적인 의식으로 늘 깨어있게 되었다는 것. 또 그 사랑을 이야기하는 전통적인 서사 양식이 점차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 "남자는 '새로운 여자'를 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자 자신이 '새로운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1996년 4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일본 아사히신문에 두 작가가 주고받는 편지가 연재됐다. 소설가 쓰지 구니오(1925∼1999)와 미즈무라 미나에는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연재가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은 오로지 신문지상에서만 만났다. 원숙한 노작가와 발랄한 여성 작가(미즈무라는 나이를 밝히기를 거부하지만 30대 후반으로 추정)는 문학에 대한 경외에 공감했다.
'필담(筆談)'은 쓰지 구니오와 미즈무라 미나에의 편지 모음이다. 찰스 디킨스, 토마스 만,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플로베르 등 대작가와 작품을 새롭게 읽고 해석하면서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문제에 대한 답을 구했다. 평생 요크셔를 떠나지 않고 홀로 살았던 에밀리 브론테가 자신이 선 곳 너머 삶도 죽음도 삼켜버리는 어두운 세계를 봤다는 것, 고골리의 '외투'에서 주인공의 외투는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해주는 물건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의 증거라는 것 등 고전을 제재로 삼아 인간 읽기를 시도한다.
두 작가는 대화의 폭을 넓혀 철학과 신화까지도 아우른다. 은둔한 스피노자의 마지막 날들에 대해 "인간 정신과 전 존재를 영원의 상(相) 아래서 바라보기 위해서였으며,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 기쁨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오이디푸스가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뛰어난 현자였지만 정작 '자기'는 이해하지 못하는 인식의 상징임을 읽는다. 이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답을 갖는다. 문학은 인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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