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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레즈를 위하여

입력
2003.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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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우·장석준지음 실천문학사 발행·1만5,000원2002년에 사람들은 'Be the Reds!'라는 영문이 쓰인 붉은 셔츠를 입고 다녔다. 한때 그 색깔은 전혀 다른 상징이었다.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였다'로 시작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끝나는 '선언'을 옮겨 적으며 가슴에 새겼을 법한 시절이 있었다.

1848년의 '공산당 선언'은 21세기에는 그리 유효할 것 같지 않다. 온 가족이 붉은 옷을 입고 소풍을 나온다. 한때 파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머리에 두른 띠의 색깔이다. 그래서 이 가족의 모습은 이른바 '모래시계 세대'인 황광우(45)씨에게는 기이하게 보인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80년 광주의 피를 보았고, 독재의 아성을 무너뜨리는데 모든 힘을 바쳤다. 그런 그가 보기에 그 결과 얻어진 것은 '가진 자들의 민주주의'였다.

'레즈를 위하여'에는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이라는 부제가 달렸지만 '공산당 선언' 해설에 머문 것이 아니다. 2부는 새롭게 번역한 '공산당 선언'을, 3부는 1971년 생 사회학도 장석준씨의 '선언' 논쟁사를 정리해 실었다. 선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 같은' 이 시대에 왜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1부에 있다. 황씨 자신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지독하게 방황했으며, 우리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냐고 계속해서 물어왔다. 그는 좌절과 방황, 그 속에서 얻은 사유를 기록했다. 10여 년 간 빠르게 잊혀졌던, 프롤레타리아와 민중을 다시 불러낸다. 프롤레타리아는 '선진강국'이 아닌 '평등세상'을 제창해야 한다고, 한국의 갈 길이 국가주의와 사회주의의 한판 싸움에 달려 있다고, '물질과 능력을 숭상하는 국가주의적 노선' 대신에 '인간과 연대를 중시하는 사회주의적 노선'을 제시해야 한다고 외친다.

황씨는 이 책에 대해 "선언을 매개로 '진보운동의 갈 길을 논했으며, 선언의 번역에 멈춘 글이 아니라 선언을 계기로 '우리의 꿈'을 적은 글"이라고 말한다. 체 게바라가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고 말한 그 꿈이며 여전히 '나'가 아닌 '우리'의 것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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