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표류하고 있다. 이라크전 종전에도 불구하고 내수침체는 더욱 심화하고 수출마저 상승속도가 꺾여 경제운용에 경고등이 켜진 가운데 부동산 값은 폭등, 서민생활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카드채 문제로 마비상태에 빠진 금융시장은 SK글로벌 사태라는 또 다른 초대형 악재로 떨고 있다. 경제위기의 실체와 대응방안을 3회에 걸쳐 긴급 점검한다. /편집자 주
새 정부 출범 100일을 앞두고 '한국경제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도·소매 판매 증가율이 4년5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경제 펀더멘털(기초 체력)을 보여주는 생산·소비·투자 등 주요 경제 지표들이 일제히 곤두박질하고 있다. 그나마 성장을 뒷받침해 온 수출마저 이달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SK글로벌 사태와 카드채 문제, 노사분규 등이 악화할 경우 2·4분기 성장률이 '제로'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 승(朴 昇) 한국은행 총재는 '저성장·고실업 시대'가 올 것을 경고했고, 재계는 현 경제상황을 "환란 이후 최악의 위기"로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경기 침체가 이라크전쟁, 북핵 문제,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파동 등 대외 악재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가계빚 및 부동산 값 폭등 방치와 무원칙한 노동정책 등 중심을 잃은 정부의 경제정책이 위기를 가중시키는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曺東徹) 거시경제팀장은 "1997년의 외환위기는 사회전반의 시장 규율이 무너지면서 발생했다"며 "사회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경제 펀더멘털이 흔들리면서 잠재성장률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지금의 경제 위기도 정부의 리더십이 표류하면서 정책실기와 혼선이 겹쳐 시장 규율이 와해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새 정부 출범 이후 공기업 민영화, 법인세 감면, 경유승용차 허용 등 주요 정책들이 이익집단의 반발과 부처간 갈등으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면서 경제 불안심리가 더욱 가중되는 모습이다. 올 2월 이후 11번이나 쏟아져 나온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은 정부 정책 실패의 대표적 사례이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이달 초 단행한 금리인하는 소비진작, 투자활성화 등 부양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부동산가격 폭등, 금융시장 왜곡(장단기 금리 역전) 등 부작용만 낳고 있다.
특히 두산중공업, 철도, 화물연대 파업 등에서 노동계의 집단행동에 밀려 원칙 없는 양보로 일관함으로써 연내 추진 예정인 투신사 구조조정, 은행 민영화 등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吳文碩) 상무는 "정부의 정책 혼선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기피, 성장 잠재력마저 상실돼가고 있다"며 "하루빨리 노사문제 등 불안요인을 해소해 투자심리를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도 "화물연대 파업과 전교조 사태 등에서 정부 정책이 혼선을 빚으면서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며 "정책시스템의 재정비와 함께 정부가 이익단체에 끌려다니지 않고 원칙에 따라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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