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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오노 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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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오노 요코

입력
2003.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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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휘브너 지음· 장혜경 옮김 솔 발행·1만8,000원오노 요코(小野洋子·70). 존 레논을 이용해 돈방석에 오른 여자? 전세계를 대상으로 사기치는 여자? 많은 이들에게 오노 요코는 비틀스 불화의 원인이자, 지적 허영심으로 포장된 예술 나부랭이를 팔아먹는 고급 사기꾼 정도로 비쳐졌다. 이런 세상의 눈길에 대한 오노의 답은 이랬다. "나에 대한 반감은 적어도 세 종류다. 반 아시아, 반 페미니즘, 반 자본주의적 감정이다."

독일 저술가 클라우스 휘브너의 '오노 요코'는'마녀에서 예술가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전위 예술가로서 오코 요코의 복권(復權)을 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존 레논과의 애정관계 보다는 플럭서스 등 현대 미술 운동의 태동을 함께 한 전위예술가로서 오노 요코의 업적을 조목조목 서술한다. 1933년 도쿄에서 은행 고위 직원의 맏딸로 태어난 오노는 사립 중·고교에서 당시 황태자인 아키히토(明仁)와 같은 반일 정도로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53년 아버지가 도쿄은행 뉴욕지점장이 되면서 오노는 부유하지만 따분했던 일본을 벗어날 수 있었다.

뉴욕의 일본인은 소수였지만, 바로 그 점을 오노는 충분히 활용했다. 나중에 남편이 된 일본인 유학생 이치야나기 도시를 통해 존 케이지, 앤서니 콕스 등과 교류했고 만났고, 그것은 앞으로 전세계 미술계를 뒤흔들 '플럭서스'의 워밍업이 됐다. 오노는 마치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 당대를 풍미한 예술가들과의 정신적, '육체적' 교류를 통해 뉴욕 예술계의 거물이 됐다. 발판이 된 일본인 남편은 지쳐서 이혼했고, 앤서니 콕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거의 방기됐다.

소유물이 아니라 존재 방식으로서의 미술 운동인 '플럭서스'(유동, 변동, 배설의 뜻)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었던 오노가 마음 놓고 미술 설치 작품이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데 두려움을 없애 주었다. 퍼포먼스와 오브제 미술을 거쳐 오노 요코는 1966년 엉덩이를 노출한 누드 영화로 또 다시 충격을 주었다. 12명의 엉덩이 맨 살을 보여준 '제 4번(플럭서스 #16)'을 시작으로 요코는 벗은 남성의 하반신을 노출하는 등 선정적 영화를 계속 발표했다. 여성의 육체 소유권에 대한 복권 선언이었다. 파격을 화두로 끊임 없이 자루를 이용한 행위예술 배기즘(Bagism), '절반의 방' 등 새로운 미술 형식에 도전했다.

"그녀는 내 가정보다 더 숨통을 조이던 비틀스와의 결혼에서 뛰쳐나올 용기를 주었다"는 존 레논의 말이 증명하듯 오노는 존 레논의 존재 찾기와 비틀스 해체의 원인이 된 것도 사실이다. 69년 암스테르담 힐튼 호텔의 밀월 여행 '베드 인' 퍼포먼스는 오노의 세상 사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를 증명한다. 그녀는 미디어를 이용하면서 동시에 세계 평화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움으로써, 지적인 예술가로서 자신을 '마케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물론 뒤로는 돈이 척척 쌓였다. 적절한 저작권 사업 관리와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늘리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오노는 자신과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의 '파워'를 가장 적절히 '경영'한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마녀이자 동시에 탁월한 매니저다. 이런 여자는 세상의 질투를 받기 딱 좋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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