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윈 B 뉴랜드 지음·명희진 옮김 세종서적 발행·1만2,000원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죽어서 사라진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 엄연히 살아 사물을 보고 느끼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서 없어진다니. 복잡다단한 감정을 주변과 나누고 여러 관계를 유지하던 그 생생하고 구체적인 존재가 껍데기만 남고 말다니. 죽음이란 과연 불행이고 재앙인가.
이 책은 미국 예일대 의대 교수로 40년 넘게 숱한 죽음을 지켜본 의사가 쓴 의학 에세이다. 그렇다고 전문가들이 직업과 관련해 쓴 보통의 에세이처럼 진료 과정에서 느끼는 단상을 줄줄이 엮은 글이 아니다. 저자는 심장마비, 알츠하이머, 에이즈, 암 등 치명적인 현대 질병으로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을 알기 쉽게 의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거기에 살인과 자살이라는 질병 외의 대표적 죽음의 방식과 양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지금은 진료 현장을 떠나 대학에서 의료윤리학과 의학사를 강의하고 있는 저자가 이 책을 쓴 더 큰 목적은 다른 데 있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저자는 아름다운 죽음에 대해서 무언가 할 말이 있었던 게다.
고통스런 투병, 암 알츠하이머 에이즈
저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수백 가지 질환이 의학계에 보고됐지만 그것을 몇몇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노인의 85%는 동맥경화증, 고혈압, 당뇨, 비만,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치매와 같은 지력 쇠퇴, 암, 감염에 대한 면역 기능 약화 등 일곱 가지 요인으로 숨을 거둔다. 물론 이런 질환은 일반인에게도 무서운 적임에 틀림 없다.
이 가운데 암과 알츠하이머는 대표적으로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고 가족 등 간병자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질병이다. '암은 보이지 않게 몸 전체로 스멀거리며 퍼져나가는 기생충처럼, 마치 그 모습이 물에 빠진 먹잇감을 공격하는 괴물의 날카로운 촉수와도 같다. 그 괴물의 중앙부가 인간의 몸에 구멍을 뚫고 조용히 생을 파먹어 들어가는 동안 날카로운 발톱이 끝없이 그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아무 소리도 없이 진행된다. 시작도 알 수 없다. 괴물이 숙주의 마지막 힘까지 앗아간 뒤에야 겨우 그 끝만을 알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미국인의 11% 이상이 알츠하이머에 시달리고 있다. 65세 이하 환자까지 포함하면 미국 전체의 환자수는 현재 400만 명, 2030년에 이르면 65세 이상 미국인 환자만 6,000만 명 정도가 될 것이라는 추정이다. 알츠하이머는 '인간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생겨난 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병자는 물론 관련된 모든 사람을 질병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병이다. 섬뜩하게도 들리지만 저자는 '단 한 가지 탈출구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주는 길 뿐'이라고 말한다.
가장 행복한 마지막 크리스마스
그래서 저자는 돌이킬 수 없는 질병의 진행 과정, 살인이나 자살 등 죽음과 관련한 현상을 서술하면서 죽음을 맞는 태도에 대해 책 곳곳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에서 '암의 독기―희망 그리고 암환자'에서 예를 든 밥 데마테이스 사례는 특히 강렬하다.
49세의 밥은 자신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죽음을 준비한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아내 캐롤린과 맞았고 결혼 후 늘 그랬듯 손님들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파티 내내 두 시간마다 아내가 놓아주는 모르핀 주사를 맞아가며 그날 저녁을 훌륭하게 치러낸다. 손님이 돌아간 뒤 그는 캐롤린에게 이렇게 말해다. "몇십 년 동안 치렀던 성탄 파티 중 가장 좋았어!" 만족한 미소 뒤에 한마디를 보탰다. "알아, 캐롤린? 죽기 전까지 최대한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파티가 있고 4일 후 밥은 호스피스 기관에 등록했다. 입소 후 이틀째 밥은 갑자기 큰 동요를 보였고 당장 죽고 싶다고 말했다. 캐롤린과 딸 리사는 어쩔 줄 몰라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밥은 모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투박한 두 팔을 벌려 오래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두 여인을 깊숙이 안았다. "죽어도 괜찮다고 말해줘. 그래야 내가 죽을 수 있다고!" 대답을 꼭 들어야겠다는 밥에게 모녀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을 때에야 그는 평화롭게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저자는 밥이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르쳐 준' 매우 소중한 환자였다고 이야기한다.
삶의 조건 편안한 죽음
하지만 이런 상황을 글로 읽어서 안다는 것은 사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죽음 앞에서 몸부림치는 환자의 가족들, 자신의 앞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병자에게 이런 조언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자의 말대로 죽음의 과정이 무섭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막상 죽음 앞에 서면 대부분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저자는 '각각의 질병이 어떤 식으로 우리를 죽이는가를 알고 있다면, 비록 죽음과 맞싸워 패배하는 순간이 올지라도 불필요한 공포로부터는 일단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다가올 마지막 순간을 위해 좀더 잘 준비하고 여행의 종착역까지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지나친 집착이나 위험이 가득한 치료를 고집하는 대신 좀더 현실적인 면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썼다. 밥처럼 '특히 암을 비롯한 중병 말기 환자의 경우 '희망'은 반드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 결론은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이다. '자연이 우리의 자식들로 하여금 이 세계를 이어가게 만든 것처럼 죽음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존엄성 있는 죽음의 기본 요소다. 우리 인생의 끝은 죽음이다.…최후에 승리하는 것은 늘 자연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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