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노하우를 활용해 사장님 됐어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남편은 정리해고·조기퇴직 바람에 전전긍긍하면서 요즘 전업주부들은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할 뿐이지, 주부는 가족의 재정·건강·교육·패션 등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만큼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한 '전문직'이다. 살림을 통해 갈고 닦은 전문지식을 활용해 당당히 사장님이 된 주부들을 만나봤다.먹거리 관심이 유기농산물점으로
"쌀이 떨어져서 쌀장사를 생각하게 됐어요." 유기농산물 전문점 '초록마을' 대치동점장 박경란(44)씨는 창업의 계기를 짧게 설명했지만, 점포를 열기까지 박씨가 쌓아온 노하우는 간단치 않다. 대학에서 식품을 전공한 후 살림하며 틈틈이 한식조리사·영양사·식품제조가공기사 자격증을 따왔고, 백화점 주부모니터 활동을 15년 하면서 백화점에 납품되는 식료품을 검증하는 감식관 업무도 맡았다.
남편이 근무하던 은행이 외환위기 당시 업무정지가 되면서 졸지에 실직한 후 몇 년간 고민 끝에 부부창업을 결심할 때 이 같은 박씨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남편 권유영(46)씨는 "아내가 판매할 농산물을 선별해 구매하고, 저는 고객관리와 배달을 맡는다. 아내가 바쁜 살림살이 중에도 한 분야에 전문지식을 쌓아온 덕택에 빠르게 사업이 제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체인점 가맹비·인테리어 비용 4,000만여원과 점포 임대료, 배달차량 등 총 창업자금 2억원 남짓 들어간 이 점포에서 부부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10시까지 함께 일하며 '제2의 신혼'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순수입은 월 400만∼450만원 정도. (02)2000-6877
아이 키우다가 보습교사 변신
초등학교 1학년 딸과 6세 된 아들을 둔 분당의 주부 윤명혜(35)씨는 자녀들을 키우느라 꼼짝할 수 없었던 자신의 집을 애프터스쿨 '맹자엄마' 분당 서현1호점이라는 일터로 바꾸었다. 평소 미술에 소질이 있어 자녀들에게 간단한 미술을 가르치다가 입소문이 나 이웃집 아이들 한 두명을 더 맡아 오던 '아마추어 미술교사'일이 본격적인 부업으로 발전된 것.
윤씨는 "초등학교 1, 2학년 정도의 맞벌이부부 자녀 6명을 학교가 끝나는 오후1시에서 부모가 퇴근하는 7시까지 맡아주면서, 체인본사가 제공하는 독서교재와 과학실습 프로그램을 교육시키고 미술도 가르친다"며 "무엇보다 '친구들이 많이 찾아와 우리집이 최고'라고 자녀들이 즐거워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교육비는 아이 1명에 월 20만원, 미술교육이나 식사비 등은 별도다. 교육비 중 80%가 윤씨의 몫이고, 추가수입은 100% 윤씨의 수입이다. 개설비용은 180만원.
윤씨는 "풍족한 수입은 아니지만 살림에도 적지 않게 도움이 되고, 자신의 일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도 생겨 여러가지로 수지 맞는 부업"이라며 웃는다. (02)2107-6202
내 일 찾고싶어 반찬전문점 차려
"아이들은 커서 밤 늦게 들어오고 건설업을 하는 남편은 출장 가는 날이 많아 빈집을 지키느니 몸이 힘들더라도 내 일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반찬전문점 '장독대' 남성시장점 점주 신선경(48)씨는 창업 동기를 "돈보다는 보람"이라고 말한다.
평범한 주부생활을 해 오던 신씨는 3년 전 남편을 도와 청소년 오락실을 운영하면서 창업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왔다. 이후 오락실보다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반찬 전문점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점포는 지하철역과 아파트단지 중간에 있는 재래시장 내에 구했고, 늘 같은 밑반찬보다는 다양한 메인 반찬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신씨는 "젊은 주부가 많은 동네 특성을 감안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 위주로 매일 새로운 메뉴를 내놓는다"고 말한다. 창업비용은 체인가맹비 4,300만원을 포함 1억3,000여만원이 들었으며 월 순수입은 500만원 정도. 영업시간은 오전 9시∼오후 9시. (02)588-8600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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