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CEO)가 공장라인에 서서 부품을 조립하고, 주유소에서 1일 주유원이 돼 고객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때로는 불량 채권회수를 위해 채무자를 찾아 나서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장기화하는 불황을 이기기 위해 기업의 임원진이 생산 최일선에 나서는 '현장체험 경영'이 확산되고 있다.
현대모비스 박정인 회장은 28∼29일 임원 38명 전원과 함께 울산 및 경인지역 모듈공장, 울산수출물류센터, 부품사업소 등을 방문해 직접 모듈을 조립하거나 제품을 포장했다.
박 회장은 "자동차부품사업은 전세계적인 아웃소싱·공동구매 확산 추세로 본격적인 글로벌 시대를 맞고 있다"며 "경영환경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체험경영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완영 오리온전기 사장도 최근 모니터용 브라운관(CDT) 생산라인에서 오후 근무조 사원들과 함께 8시간 동안 직접 각 공정별 업무를 체험했다.
고객과 직접 만나는 체험경영을 실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SK(주) 황두열 부회장은 여의도에서 1일 주유원이 돼 하루종일 서서 주유하며 고객의 목소리를 들었다. 위기일수록 고객의 소중함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LG텔레콤 남용 사장도 서울 논현동 LG텔레콤 고객센터에서 일일상담에 나섰다. 남 사장은 "고객의 요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한다"며 전 임원들이 7월4일까지 매주 1회 고객센터 상담원 체험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현대캐피탈은 이달 말까지 실·본부장급 임원들이 직접 채권회수 업무를 체험하는 '일일 현장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현대캐피탈 임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채무자면담, 외근업무 동행 등 채권회수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채권회수 현장근무를 체험했던 재무지원실장 이종일 이사는 "직접 체험해보니 채권회수 직원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며 "이번 체험이 향후 회사 경영방침을 정립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솔그룹 조동길 회장도 계열사의 각 지방사업장을 순회하며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등 현장경영을 실시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정일 수석연구원은 "최고경영자의 생산현장 경험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며 현장 직원들의 사기를 높일 수도 있다"며 "그러나 현장 방문이 너무 잦으면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위축될 우려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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