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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의 개그인생 20년](5·끝) 나의 길, 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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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의 개그인생 20년](5·끝) 나의 길, 나의 꿈

입력
2003.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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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보면 내가 코미디언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구든 웃음을 머금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내가 코미디언이 된 것은 날 때부터 운명 지어진, 신(神)의 각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힘들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듯 온전히 내 힘만으로 이 자리에 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항상 능력보다 배로 인정 받는 걸 보면 나는 참 운이 좋은 여자다. 무대에서는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죽을 듯 아프다가도 무대에 서면 언제 그랬나 싶게 힘이 솟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긴장이 풀리며 다시 아프다. 팔자는 팔자다.지금 유럽에서는 '유머 경영'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유머 훈련을 받게 해 직장 분위기를 활기차게 한다는 것이다. 어떤 회사는 입사시험에서 면접관을 웃기면 가산점을 주고, 최근에 남을 웃긴 게 언제였는지를 점수에 반영한다고 한다. 입사 후에도 동료를 웃기거나 즐겁게 했을 때 티셔츠나 책 등을 선물한다고 한다.

우리보다 웃음이 많고 긍정적 사고를 지닌 유럽인들이 왜 이렇게 유머에 집착하는 걸까. 한 연구에 따르면 유머는 우뇌의 분석적 논리를 중단시키고, 좌뇌의 상상력을 자극해 사물을 기존과 다른 눈으로 보게 하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코미디언인 내 어깨가 우쭐해지려 한다. 앞으로 기업에서 '유머 컨설턴트'로 나를 부르는 일이 있다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쪼개보려 한다.

코미디 만드는 작업은 즐겁다. 내 자랑 같아 좀 쑥스럽지만 KBS의 '코미디 세상만사'나 '개그콘서트'는 내가 아이디어를 낸 프로그램들이다. 남들이 똑같이 생각할 때 나는 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른들이 볼만한 코미디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탄생한 것이 목욕탕에서 아줌마들이 펼치는 한 판 수다로 인기를 끈 '코미디 세상만사'다. 웃고 싶은 사람들이 가서 실컷 웃을 수 있는 공개코미디는 어떨까 싶어 만들어진 것이 '개그 콘서트'다. 코미디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 연기자와 PD, 작가, 모든 스태프들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짜내 만들어지는 '예술'이다. 우리나라처럼 어려운 여건 속에서 오늘도 좋은 웃음을 만들기 위해 묵묵히 애쓰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남을 웃기는 일,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나는 그 일로 20년을 먹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더 바란다면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 나는 지금 유니세프를 비롯해 녹색연합 여성단체연합 등 20여 단체에서 홍보대사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을 돕는다지만 내가 얻는 즐거움과 보람이 더 크다. 언젠가 그런 일을 체계적으로 할 재단을 세우고 싶다. 이름하여 '웃는 재단'. 그 꿈을 향한 첫 걸음으로 2001년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웃는 재단' 아래는 코미디 학교도 만들 생각이다. 밤 새워 아이디어 회의를 한 뒤 새벽녘 포장마차에서 후배들과 함께 먹던 가락국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밝혀주던 밤 하늘의 별빛, 나이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 듣는 강의, 스케줄에 쫓겨 제대로 준비를 못 해 마음 졸이며 보던 쪽지시험…. 나는 이 모든 것을 사랑한다.

20년 동안 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사랑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여러분! 제발, 웃기다 죽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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