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경찰서 앞을 지나던 이모(65)씨는 최근 경찰서 게시판에 게시된 총기허가 취소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올라 있는 것을 보고 시름에 빠졌다. 공공연하게 노출된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이름 등 신용정보가 혹시나 악용되지나 않을까 우려됐기 때문이다.경기 수원시 인계동에 사는 회사원 박모(27)씨는 최근 예비군훈련 통지서를 받아 들고 깜짝 놀랐다. 출장 때문에 며칠 집을 비운 동안 예비군 중대본부에서 아파트 현관문에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이름이 그대로 보이는 통지서를 붙여 놓았던 것. 박씨는 "중대본부에 정보 누출 위험성을 항의했지만 '그런 일이 무슨 문제냐'는 무책임한 답변만 들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관리 소홀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보호 받아야 할 개인의 주민등록번호, 이름 등이 그대로 노출, 공개되면서 범죄에 악용되는 등 피해도 커지고 있다.
경찰은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의 수배 전단에 적힌 주민등록번호를 한 고등학생이 도용, 성인 사이트에 가입한 사건을 계기로 모든 수배 전단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삭제했다. 그러나 경찰서 외부에 게시하는 공문, 통지문 등에는 여전히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된 경우가 많다. 일선 동사무소의 개인정보 관리 소홀도 여전한 상태다. 관리 지침이 명확하지 않아 정보가 노출되는 사례도 많다.
이 같은 점을 악용한 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접수된 주민등록번호 도용 등으로 인한 사이버 범죄는 5,18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149건에 비해 65%나 늘었다. 타인 명의 휴대폰인 '대포폰' 개설, 위조 운전면허증 발급 등이 대표적인 사례. 인터넷 사이트에서 개인정보를 이용, 타인 명의로 회원에 가입한 뒤 판매 사기 등을 벌이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정부 차원의 뚜렷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 정보통신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공무원, 통신업체 직원 등이 개인정보를 유출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있지만 민간 영역의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된 처벌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팀장은 "올 하반기부터 공공기관의 무분별한 주민등록번호 사용과 노출을 제한 하는 법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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