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이 서는 곳/ 칼자루 보이지 않는 안개 서린 곳/ 밤새워 흘린 핏자국/ 마저 보이지 않는/ 발붙일 수 없는 알 수 없는 떠날 수 조차 없는/ 한번 묻혀 다시는 헤칠 길마저 없는/ 늪이여 저주의 도시….20·30대 사진작가 집단 'Stray Cats'(방황하는 녀석들)는 시인 김지하가 '발붙일 수 없는 알 수 없는 떠날 수 조차 없는' 도시라 이름 붙인 서울의 거리를 구석구석 헤매는 사람들이다. 칼 대신 카메라를 무기 삼아, 서울에 그래도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 '밤새워 흘린 핏자국'을 증언하려고 그들은 셔터를 누른다.
누가 먼저 모이자고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홀로 행동하는 밤고양이처럼, 그들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기 위해, 암흑 속에 번득이는 고양이 눈을 하고 플래시를 떠뜨렸다. 서로 같은 작업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 뒤에는 한 번 사진을 모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Stray Cats는 그들의 작업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 됐다.
권순평(38) 조용준(36) 류상수(36) 이효태(33) Buzz(가명·30) 박경택(30) 고현주(29) 강무성(25) 등 8명이다.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현직 교수, 대학원생, 광고 사진 전문 스튜디오 운영자, 로큰롤 그룹의 베이스 주자, 대학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하다가 아예 사진으로 인생을 바꾼 사람 등 다양하다. 그들에게 공통적인 것은 가장 객관적이고 직설적으로 현실을 재현하는 스트레이트 사진을 통해 서울의 숨겨진 모습을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서울은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진화해 온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수도라는 점을 넘어, 현대 사회의 복합적인 욕망과 권력, 문화가 뒤엉킨 도시의 표상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적 문화코드는 물론 범세계적 트렌드가 시공을 넘어 공존하는 곳입니다. 서울의 현재의 모습과 그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디스토피아적 모습을 포착하려는 게 우리들의 작업입니다."
조용준씨는 '일상에 대한 다른 시각'을 담는 데서 스스로의 사진작업의 의미를 말했다. 그의 사진들은 정신과 육체가 따로 노는 풍경을 포착하려 한다. 그의 사진은 두 장의 사진이 하나의 세트로 구성된다. 왼쪽에는 갖가지 표정과 동작을 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클로즈업돼 있고 오른쪽에는 실제 그 여성들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를 원경으로 보여준다. 눈물을 글썽이며 엎드린 채 손을 뻗고 망연자실하고 있는 여성의 사진 옆으로 지하 주차장의 휑뎅그렁한 사진이 놓인다. 주차장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여성이 구석의 기둥 뒤쪽에 엎드려 있다. 공원 벤치에 무릎을 껴안고 앉은 여성, 탄천 둔치 한쪽에 주저앉아 있는 여성의 사진도 보인다.
"쳇바퀴 돌 듯 정적으로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 이면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슬픔과 괴로움, 분노, 자포자기를 경험합니다. 그것을 드라마적 구성으로 보여주려 했습니다." 조씨는 대학에서는 조선공학을 전공했지만 사진을 통해 '뭔가 다른 것을 표현해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아예 진로를 바꿨다. 지금 그는 서울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으며 사진전문 인터넷 포털 사이트 '포테이토'(www.fotato.com)의 컨텐츠 팀장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류상수씨는 도시에서 성(性)이 인스턴트 상품화하는 현실을 흑백 사진으로 보여준다. 그가 찍은 3류 에로비디오의 장면 같은 사진들은 역설이다. 성애 직전의 장면들, 나신을 드러낸 여인의 창백한 모습은 거꾸로 우리 기억 속에 존재하는 누나 혹은 어머니의 품을 연상시키게끔 한다.
이효태씨의 사진에는 희뿌연 안개나 스모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고층 아파트 단지, 한창 진행되고 있는 한강변 공사장의 모래언덕을 넘어가는 포크레인의 모습이 보인다. 회색 아파트 단지가 안개 속에 갇힌 모습은 마치 암울한 미래가 이 도시의 앞에 놓여있을 것임을 일깨우는 듯하다. 그는 "사진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지 말고 그 이면의 것들 봐달라"고 주문한다. "우리 세대야말로 한국에서 빈부의 격차라는 것을 몸으로 겪은 첫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7살 때 서울로 와 '서울의 무게'를 실감했지요. 밉고 싫지만, 무엇보다 정상적인 도시의 풍경에서 그 무게감을 찾아보려 합니다."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맨날 수십 컷의 사진을 찍지만 아이 유치원 입학 사진도 찍어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장 나이 어린 강무성씨의 작업도 독특하다. 그의 사진들도 두 장이 한 세트를 이룬다. 왼쪽에는 교복을 입고 다소곳이 선 여학생, 오른쪽에는 핸드백을 메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여학생이다. "무엇이 자유일까, 어떤 집단에 소속된 모습이 자유일까 아니면 나만의 자유가 있을까 하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교복을 벗은 여학생은 구찌 펜디 루이뷔통 등의 명품으로 치장했는가 하면, 수수한 청바지에 단화 차림도 있다. "강남, 강북 학생의 차이는 물론 저 자신과의 세대 차이도 느껴지더군요." 강씨는 소속 대학에서 공문을 받아 길거리에서 사진 촬영에 응할 여학생들을 섭외한다. 그렇게 30명 넘는 여학생들의 사진을 찍었다. "10, 20년 후에도 이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계속 촬영하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서울과 한국 사회가 변하는 모습일 거라 생각합니다."
강씨와 조용준씨의 인연도 재미있다. 강씨가 대학 진학을 위해 다니던 사진 학원에서 조씨는 강사였다. 몇 년이 지나 함께 서울을 찍는 작가로 만난 것이다.
굳이 이름을 드러내길 꺼리는 Buzz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다가 한때 커다란 인기를 모았던 로큰롤 그룹의 베이스 주자로 활동하는 등 그야말로 자유로운 삶을 산다. 그는 요즘은 대중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에 사용하던 연습실 등을 기억 속의 공간으로 촬영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미지만이 순환하는 현대인의 기억과 삶을 포착하고 싶다"는 것이다.
Stray Cats는 우연히 모였지만 그들의 포부는 크다. 우선 7월쯤 각자 1998년 이후 최근까지 작업해온 작품들을 한 데 모아 전시회를 열고, 그 결과물을 출판도 할 생각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메가폴리스의 정점에 놓여있는 현대 서울의 모습과 그 이면에 내재하는 디스토피아적인 의미를 보여준다는 뜻에서 '공공정보―디스토피아 서울'로 정해놓았다. 내년에는 '길 위에서― On The Road'라는 주제로 두 번째 전시회를 여는 등 앞으로 10년간 매년 전시회를 열어 서울의 모습을 확인해 나갈 작정이다.
"평소에 우리가 접하는 실재이지만, 렌즈를 거쳐 그것이 표현됐을 때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예술로서의 사진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Buzz는 "19세기를 파리가, 20세기를 뉴욕이 세계의 도시로서 대표했다면 서울은 21세기 세계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도시가 될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록하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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