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맘보'는 2000년에 만들어진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구작'이다. 허우 감독의 이 영화는 대만 도시의 삶을 찍은 3부작의 첫 번째 영화이며 드물게 과거가 아닌 현재를 다룬 영화이다. 한번 장면이 시작하면 좀처럼 끝나지 않는 허우 감독의 긴 화면 스타일은 유명하지만 이 영화에선 카메라가 조금씩 움직인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필자는 허우 감독의 영화에서 카메라가 움직인다는 데 감격했다. "아,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에서도 드디어 카메라가 움직인다!"2000년 부산 영화제에서 만난 허우 감독의 예술가 티를 내지 않는 인품과 세상에 대한 믿음은 영화만큼이나 좋았다. 그는 대만의 과거 역사를 다룬 예전 영화에서 클로즈업도, 카메라 움직임도 없었던 것은 '과거를 담은 영화란 빛 바랜 사진을 포개 놓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제 현재를 다루면서 그의 영화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삶에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망설이듯 카메라가 움직인다. 제목은 '밀레니엄 맘보'지만 21세기를 맞이한 시대에서도 영화 속 젊은이들의 삶은 그렇게 행복한 것 같지 않다.
수치(서기)가 연기하는 여주인공 비키는 이 남자 저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 이곳 저곳을 떠돌며 다친다. 왠지 어떤 알 수 없는 운명에 억류된 것 같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녀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녀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녀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너무 많고 잘못된 선택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는다. 퇴폐적이고 혼란스러운 대만 젊은이들의 일상을 다룬 초반부에서 벗어나면 후반부에는 일본 유바리에서 맞이하는 비키의 즐거운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은 바깥에서 다치면 집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유바리는 여주인공 비키에게 집 같은 안식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소녀처럼 재잘거리며 웃고 즐거워하는 비키 역의 수치는 그녀가 출연한 어떤 영화에서보다 '밀레니엄 맘보'에서 가장 아름답다.
칸 영화제에 출품된 '밀레니엄 맘보'는 파리에서 5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대만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대만 관객은 국제 영화제 수상작을 멀리 한다. 한국에서도 점점 사정은 비슷해진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제 블록버스터의 계절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매트릭스 2―리로디드'는 21세기 액션 영화의 지평을 연 작품답게 용광로처럼 온갖 기존 영화의 표현을 빌어 와 녹여버리고 훨씬 과다해진 액션으로 관객의 얼을 빼려 한다. 전편에 비해 산만하고 이야기가 훨씬 유치해졌지만 전편의 괜한 철학적 현학이 부담스러웠던 관객에게는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한때 한국에서 가장 출중한 액션영화 감독이었으며 1980년대에는 국제 영화제에서 환영받는 감독이었다가 잠시 역사에서 사라진 이두용 감독의 복귀작 '아리랑'은 무성 영화를 보지 않고 자라난 세대에게 신기한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폭발력은 약하지만 변사의 내레이션을 깔고 무성영화 스타일로 잘 알려진 나운규의 '아리랑'을 리메이크한 발상이 그럭저럭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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