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월드컵 첫 승에 이어 8강전에서 무적함대 스페인을 승부차기 끝에 격침시키고 '4강 신화'를 창조해낸 꿈만 같던 그날 밤. 태극전사 23인과 붉은 악마 응원단, 온 국민은 흥에 겨워 '대∼한민국' '오! 필승코리아'를 목놓아 외치며 강강술래를 추었고, 한반도는 환희의 붉은 물결로 넘쳐났다. 그로부터 1년. 빛 바랜 한 장의 사진처럼 잠시 힘겨운 일상에 묻혀있던 4강 신화의 감동이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분출하고 있다. "4강신화는 일회성이 아니라 재창조하고 이어가야 할 숙제"라는 메시지와 함께. 한국일보는 월드컵의 환희와 '월드컵 그후 1년'을 2개면씩 3회에 걸쳐 재조명한다."깜짝 놀랄 것" 하나둘씩 현실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 월드컵 개막 한달여전 거스 히딩크 감독은 이렇게 큰소리 쳤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았다. 4일 부산에서 열린 폴란드와의 첫 경기. 황선홍의 왼발 발리슛과 유상철의 대포알슛이 48년간 고대했던 첫 승의 감격을 선사하면서 히딩크의 큰 소리가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호사다마일까. 최약체로 첫 승 제물이었던 미국전에서 한국은 클린트 매시스에게 선제골을 빼앗기며 끌려간 끝에 후반 33분 안정환의 동점 헤딩골로 기사회생했다. 1승1무. 비기기만 해도 사상 첫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루이스 피구가 버티는 포르투갈은 넘기 힘든 산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또 일어났다. 핀투가 퇴장하는 등 숫적 우세 속에 한국은 후반 25분 골지역 오른쪽에 있던 박지성이 가슴 트래핑 후 발등으로 차올리며 콘세이상을 따돌린 뒤 왼발 슛으로 결승골을 잡아내 D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폴란드전 50만 인파로 시작된 길거리 응원단은 이날 279만명으로 늘어나 방방곡곡을 붉게 물들였다.
'4강 신화' 이젠 독일월드컵으로
18일 대전월드컵경기장. 세계는 또 한번 깜짝 놀란다. 우승후보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전반 비에리에게 선제골을 내줘 패색이 짙던 한국은 후반 43분 설기현의 동점골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연장 후반 12분 터진 안정환의 헤딩 골든골. 순간 안정환은 감격에 겨운 듯 그라운드에 누워 한동안 일어날 줄 몰랐다. 8강 창조의 날 이었다.
22일 빛 고을 광주에서의 4강전. 120분간의 혈투 끝에 스페인과 승부를 가리지 못한 한국은 승부차기끝에 이운재의 선방으로 5―3, 무적함대마저 격침시켰다. 세계는 입을 다물었다. 25일 독일과의 준결승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물론 전국의 거리에는 650만 명의 인파가 쏟아져 나와 신명 나는 굿 판을 벌였다. 하지만 후반 30분 미하엘 발라크에게 결승골을 내준 한국은 요코하마행의 꿈을 접어야 했다. 29일 3,4위전에서 터키에 분패했지만 태극전사들과 국민은 4강 이상의 자신감을 얻었다.
"이젠 2006년 독일월드컵이다." 태극전사와 붉은악마, 국민들의 매서운 시선은 4강에서 패배를 안긴 독일로 향하고 있다.
/여동은 기자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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