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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의 개그인생 20년](4) 뜨거운 것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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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의 개그인생 20년](4) 뜨거운 것이 좋아

입력
2003.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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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 커튼을 걷어 보았다. 베란다에 신경 못쓰고 놔뒀던 하얀 호접란 꽃대가 네 개나 올라와 있다. 물도 제대로 주지 못했는데…. 3년 전 아나운서 김병찬씨 부부에게서 선물로 받은 서양란인데 해마다 꽃대가 올라와 나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한다.나는 꽃을 유난히 좋아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 훌쩍 5,000원 정도 들고 양재동 꽃시장에 가면 꽃구경 실컷 하고 작은 꽃 서너 뿌리를 산다. 그 돈이면 두부랑 달래를 사다가 된장국을 끓일 수도 있지만 인생에서 된장찌개가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흰 국화만 보면 토크쇼에서 들은 탤런트 김수미씨 사연이 생각나 혼자 웃는다. 흰 국화가 싱싱해 두 다발을 사서 침대 양 옆에 꽂아두니 방 안에 향기가 그윽하고 잠이 절로 오더란다. 한참을 자다 일어났는데 남편이 침실 문을 열고 들와 두 번 반 절을 하고는 "고인의 명목을 빕니다" 하고 나가더란다. 침실을 둘러보니 하얀 침대 옆에 하얀 국화꽃, 완전 상가집 분위기더라나?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즐긴다. 나도 몰랐는데, 프로그램속의 나를 돌아보니 뭔가 틀에 박힌 것 보다는 새로운 걸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느꼈다.

2000년 SBS 프로그램 '뷰티풀 라이프'에서 경비행기를 몰고 세계일주를 하는 기획이 있었다. 김원희, 백지연, 나, 이렇게 여자 MC 세 명이 경비행기를 몰고 36개국을 날아서 다시 되돌아온다는 야무진 기획이었다. 세 여자 모두 겁도 없이 하겠다고 동의해서 우리는 정말로 경비행기로 각자 구간을 정해서 날아갔다.

두 여자가 먼저 출발해서 아프리카로 비행기를 몰고 오면 내가 기다리고 있다가 비행기를 몰고 케냐에서 탄자니아, 동물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는 초원 응고롱고로, 세렝게티 등을 날아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물론 경비행기로 세계일주를 한 이주학 조종사가 함께 비행기를 몰았다. 조종석이 두 개가 있어 한 사람이 몰다가 피곤해 눈을 좀 붙이면 다른 사람이 몰고 가곤 했다. 아무 것도 없는 까만 하늘에 별들이 바로 머리 위에서 너무나 아름답게 반짝였다. 그 편안하고 경이로운 느낌은 아마도 다시 경험하기 힘들 것이다.

이주학씨, PD 한명, 나, 이렇게 세 명은 끝없이 날아간다. 날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좁은 비행기에서 어떻게 해결했을까? 우리는 전부 기저귀를 차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프리카 초원 위를 날다가 번개가 치고 비가 오는 어느날, 엔진과열로 불시착을 하게 됐다. 비행기 날개 아래 비상텐트를 치고 동물 때문에 서로 망을 보면서 잠을 자기로 했다. 두 남자는 텐트를 나에게 양보하고, 내가 무서울까 봐 함께 텐트 안에 있을 사람을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미숙자(어린 인간)들이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들어오기로 결론을 내렸단다. 나중에 내가 팬티 장사를 한다면 이 이름을 꼭 쓰리라 다짐했다, 그때. '치사빤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낯선 땅, 무서움과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우리는 스스로 명랑해졌고 서로를 지켜주며 아침을 맞았다. 안개 속에 희미하게 초식 동물인 누가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보이고 기린이 서로 목을 기대고 우리를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나뭇잎을 뜯고 있었다.

어쩌면 무모한 일이었다. 그러나 내 인생에 이 일은 많은 여운을 준다. 뜨뜻미지근하게 살아왔던 내가 뜨겁게 사는 법을 배운 행운의 기회였다.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언제 한 번 그렇게 뜨거워 본 적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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