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생활이 힘들게 느껴지는 건 가족, 친구들이 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충격 내지는 부적응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한국에서 태어나 30년 이상을 산 내가 호주에 갔을 때 느꼈던 문화적 충격은 다른 젊은 친구들보다 더 크고 오래 지속되었다.첫번째 문화적 충격은 더치 페이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젊은 사람들은 각자 자기 몫은 자기가 계산하는 문화가 많이 퍼져 있다고 하지만 이곳은 예외 없이 더치 페이다.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좋은 점은 있지만 매번 돈을 따로 내면서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을 것 같다는 미묘한 감정이 늘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긴다.
언젠가 내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온 가족이 할아버지 생일을 맞아 저녁 식사를 하러 왔다. 행복한 식사 시간이 끝날 무렵 할아버지가 계산서를 요청했고 신용 카드로 계산을 마쳤다. 잠시 후 가족들이 나를 불러 잔돈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더니 모두들 각자 먹은 음식값을 계산해 할아버지에게 모아주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할아버지 생신 날 먹은 음식값도 각자 계산하는 나라구나' 싶어 어이가 없었다.
또 다른 한가지는 호주인들의 시간 관념이었다. 처음 호주에 와서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한국인 식당에서 일했다. 아르바이트는 보통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하던 일을 마무리하다 보면 10∼20분 정도는 넘겨 일하는 게 보통이고 그 정도 더 일한 것에 대한 보수는 생각지도 않았다.
얼마 뒤 호주 사람들과 컨벤션 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다. 나는 한국 사람의 부지런함을 보여 주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 11시까지 일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하던 일이 끝나지 않으면 20분 넘게 마무리를 했다. 어느날 매니저가 일하는 시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안 갔느냐고 물어 나는 자랑스럽게 하던 일을 마치고 가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자 매니저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하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냐고 하니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일하고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 게 속상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시간 외로 일을 하면 반드시 그 만큼 보수를 지불해야 하는 호주의 문화 때문이었다.
나도 이제 각자 돈을 내고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끝내는 호주의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따금 한국의 정(情)이 넘치는 문화가 그립다. 서로 계산하겠다고 계산대 앞에서 밀고 당기고, 시간을 넘기더라도 완벽한 마무리를 해놓고 기분 좋게 웃는 한국의 정겨운 모습이 떠오른다. 그건 반드시 토종 한국인인 내가 전부고 최고라고 부지불식간에 체득하고 살았던 습관들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윤 미 경 호주 쉐라톤 미라지 골드코스트 호텔 근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