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는 가운데 다음달초 구성되는 새만금 신구상기획단이 새만금의 향후 향방을 가름할 중요한 분수령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맞춰 전북 지역의 학자들이 새만금 갯벌을 살리면서 전북의 개발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한적 개발론을 제출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현재 농지 조성 목적의 새만금 사업이 오히려 전북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 향후 신구상기획단에서 이 방안이 중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갯벌 보존, 사업규모 축소
오창환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홍성훈 전북대 경제학부 교수, 권혁철 전북대 사회과학부 교수, 전승수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등 4명의 교수들이 최근 '새만금 대안' 토론회에서 제기한 '제한적 개발론'은 방조제를 막지 않고 갯벌을 살려두는 대신 간척규모를 현 계획에서 7분의 1인 수준인 4,000ha로 축소, 농지가 아닌 복합산업단지로 활용하자는 내용이다. 또한 현재 건설된 방조제를 항만 시설로 이용하고 갯벌 자원을 해양 생태 공원으로 활용하면 현 새만금 간척사업보다 전북을 더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전북도의 비현실적 개발욕구
이러한 제한적 개발론에 관심이 쏠리는 배경에는 전북도가 새만금에서 요구하는 개발욕구를 현실적으로 구체화했다는 데 있다. 전북도와 산업연구원이 1997년 제안한 새만금지역의 산업복합단지안은 전북의 개발욕구가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복합단지안은 새만금 간척지 2만8,300ha 중 5,980ha(21.2%)를 첨단 산업물류단지, 5,800ha(20.5%)를 도시 용도, 1,680ha(5.9%)를 관광단지, 1,120ha(4%)를 공항으로 활용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방조제 바깥쪽에는 항구까지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나머지 땅도 원예 화훼단지 등으로 조성, 쌀생산 농지는 9,000ha(31.8%)에 머물고 있다.
즉 전북도가 새만금에서 기대하는 것은 농지가 아니라 첨단산업과 항만, 관광이 어우러진 복합단지라는 사실이다. 이후 새만금 찬반논란으로 당장 방조제 공사 중단여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복합단지안은 표면적으로 수그러들었지만 전북의 복안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오창환 교수 등이 지적하는 것은 이러한 전북의 청사진이 실현불가능한 희망사항이라는 것이다. 우선 복합단지안은 전북도와 산업연구원 자체 자료만 따져도 18조여원의 막대한 자금이 든다. 현재 연간 1,700억원씩 지원되는 예산으로 복합단지화하는데 110년여년 걸릴 정도로 비현실적인 것. 이는 엄청난 양의 토사가 추가 돼야하기 때문이다. 방조제 공사 후 물을 빼고 염분만 제거하면 농지로 사용되지만, 산업단지로 사용할 경우 이 간척지를 모두 흙으로 메워 지반을 다져야 해 남산 150개 분량의 토사가 소요되는 것이다. 전북도의 희망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새만금 전북 발전의 장애물
제한적 개발론자들은 여기에 전북이 처한 현 경제 여건에서 가장 필요한 투자처가 어디인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현재 퇴적물로 가득채워지고 있는 군산항으로서는 국제적 산업단지를 건설할 수 없어 새로운 항만시설 건립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것. 정부 투자 또한 평택항과 광양항에 집중돼 전북이 자칫 서해안 산업 물류 거점 경쟁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북도의 허황된 새만금 복합단지안은 설령 시행하더라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며, 농지 조성 사업은 전북에서 서해안 시대의 산업 물류 중심지 기능을 빼앗아 오히려 전북의 발전을 가로막는 사업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갯벌보존과 개발의 대타협
이들의 해법은 결국 간척규모를 축소하는 대신 사업시기를 앞당겨 2010년까지 전북이 필요로 하는 항만, 복합단지건설에 중점 투자해 서해안시대의 산업 거점 후보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들의 계획안에 따르면 사업 예산도 2조4,000여억원 정도이다.
이렇게 되면 굳이 방조제를 막을 필요도 없어져, 3만7,000ha의 갯벌이 살아남게 된다. 전승수 전남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현 방조제를 허물지 않더라도 갯벌보존이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현 방조제 개방구간인 4.4㎞를 막지 않고 교량으로 연결해 갯벌은 생태 관광 자원으로, 방조제는 새만금 신항의 부두로 활용하게 되면 방조제는 골치 아픈 유물이 아닌, 개발과 보전이라는 일거양득의 인프라가 되는 셈이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道·환경단체 양측 모두 "글쎄"
오창환 교수 등이 제안한 제한적 개발론에 대해 전북도나 환경단체들은 아직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환경단체로서는 갯벌 보존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어쨌든 일부가 개발되기 때문에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전북지역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복잡한 역학관계에서 이 안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아직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이 개발에서 소외된 전북의 현실을 무시한 채 무조건적인 개발 반대만을 외칠 경우 오히려 역비판에 몰릴 수 있어 일부 양보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전북도 일단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 안이 전북도의 현실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크게 거부할 이유가 없지만 환경단체에 일단 한번 밀려 방조제 공사를 중단하게 되면, 새만금 사업 전체가 물 건너갈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이 깔려 있어 양보가 쉽지 않다. 전북도가 합리적 대안을 내놓지 않은 채 "일단 방조제부터 막고 보자"는 데만 집착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인 셈.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변수는 새만금 사업의 실제 주체인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의 입장이다. 농림부가 농지가 완전 배제된 이 제한적 개발안에 반발할 것은 분명하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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