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자들은 그처럼 진지하고 답답하고 긴 사유를 요구하는 책을 견뎌내지 못한다. 오늘날 진지함은 따분함이고 따분함은 곧 죄악이다. 교보문고의 책더미 속에서, 특히 신간 더미 속에서 그런 책들은 점점 더 발견하기 힘들다."평론가 이남호(47·사진) 고려대 교수가 책에서 문자의 역할과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독자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이씨가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발표한 '문자제국쇠망약사(文字帝國衰亡略史)'는 책 속에서 문자가 사라져가는 과정을 짚은 글이다. 이씨는 먼저 1960, 70년대 지성의 증표이자 책의 긍지였던 '세계문학전집'과 '세계사상교양전집' '을유문고' 등이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거의 외국 책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작은 활자와 두꺼운 분량과 한자 혼용과 세로쓰기로 된 문자만의 책을 요즘 대학생들은 잘 읽어내지 못한다. 특히 사유가 길고 복잡한 내용의 책은 기피된다"는 것이다. 이씨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유종호 저) '김영하·이우일의 영화 이야기' 북디자이너 이나미씨가 만든 'a moment of dreaming beyond and further in a box' 타이포그래퍼 안상수씨가 제작한 '보고서/보고서' 등을 통해 책의 성격이 어떤 모습으로 달라지고 있는지를 훑는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때 화려한 문명의 제국을 건설했던 그러한 문자들은 급격히 세력이 약화된다는 사실"이라면서 "그래픽성에 대한 강조 혹은 새로운 감각이 문자성의 쇠퇴라는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남호씨는 문자문화시대에서 전자문화시대로 전환한 오늘날 "문자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긴 하되 문자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사유하는 데 점점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사람들은 문자성이 강한 책으로부터 멀어진다"고 말한다. 이씨는 오늘날의 책이 "활자가 커지고 내용이 가벼워지고 무엇보다도 시각 이미지가 강화된다"면서 "이러한 책의 변화는 화려하고 감각적인 전자시대에 살아 남기 위한 자기 갱신의 의미가 있다. 사람들의 감각은 문자성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래픽성에 편함을 느끼도록 변했다"고 설명한다. 문자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책, 이성적 사유와 인식의 도구로서의 문자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 이씨는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문자와 책의 사라짐은 우리 문화의 천박함이나 지성의 조잡함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문자제국의 쇠망 앞에서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고 밝힌다.
/김지영기자 kimjy@ 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