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궁궐은 경희궁의 편전인 경현당(景賢堂). 여기에 보령(寶齡) 쉰아홉이 된 숙종 임금이 국가원로인 기로 10명을 초청해 잔치를 벌였다. 그림 제목의 '석연(錫宴)'은 임금이 신하를 위해 베푸는 잔치라는 뜻이다.잔치는 1719년(숙종 45년) 음력 4월 열여드레로 아침 아홉시 무렵에 열렸다. 참석자는 모두 186명에 이른다.
그림 속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왕과 세자는 그림 상단 휘장 드리운 곳에 '자리'만 그렸고, 이 잔치의 주빈 10명은 중앙 '무대' 가장 가까운 곳에 꽃으로 장식한 상을 하나씩 받고 앉아 있다. 이분들은 모두 정2품 이상 문관(文官) 벼슬을 지낸 70세 이상 원로이기 때문에 잔치 중에 혹시 불편한 일이라도 생기면 급히 돌봐드리기 위해 각각 한 사람 씩 배치했다. 노인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알뜰하게 느껴진다.
이밖에 왕과 왕세자 주변에 근시(近侍) 22명이, 편전 주변에 의장을 든 사람, 관원들 옆으로 보검을 든 사람, 편전 바깥쪽에 깃발을 든 사람 52명 등이 위엄 있는 잔치의 분위기를 돋우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그 사람들을 배경으로 중앙 무대에서는 무동(舞童) 두 명이 편종, 편경을 갖춘 장중하고 우아한 궁중음악 합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연주단 앞에는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무동 8명이, 오른쪽 옆에는 처용 가면을 쓴 무용수 5명이 각기 색깔이 다른 처용무 의상을 입고 서 있는데 잔치는 아직 초반인 듯, 흥겨움 보다는 엄숙한 기운이 감돈다.
그러나 이제 술이 몇 순배 돌고, 음악과 춤이 흥을 돋우면 사람들은 비로소 서로 축하와 덕담을 건네며 불그레해진 낯빛으로 행복한 웃음을 지을 것이다. 이 잔치가 얼마나 귀한 잔치인가. 숙종 임금이 조선왕조에서는 두 번째로 기로소(耆老所)에 입적하게 돼 마련된 자리니 여기에 초청된 기로 10명은 그야말로 '오래 산 보람'을 느끼며 임금이 내리는 술잔을 받아 들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이날 숙종은 '기쁜 뜻을 기리기 위해 은 술잔(銀杯)을 내린다며 은잔으로 술을 돌렸으니 이날 기로들은 경현당 뜰에서 평생 잊지 못할 아침을 맞았던 것이다.
기록과 그림으로 충실하게 묘사된 숙종조 기로연은 280년 여년 만에 처음으로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서 재현된다. 환갑을 앞둔 국왕이 70세, 80세 고령의 국가 원로와 함께 한 정감 넘치는 아름다운 예의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서 이 잔치에 내재된 다양한 '한국인의 문화 마음'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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