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 이후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유럽이 군사·기술적으로 대미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유럽 7개국은 27일 미국의 C―130, C―17 등과 경쟁할 독자적인 대형 차세대 군용 수송기를 개발하는 A400M 프로젝트에 서명했다. 총 사업규모 200억 유로(약 27조 6,000억원)의 이 프로젝트는 유럽 무기조달국(Occar)이 사업 주체가 되며, 유럽 합작 항공사인 에어버스의 자회사인 에어버스 밀리터리가 생산을 맡아 2009년부터 공급할 예정이다.
유럽측은 이 프로젝트가 가동됨으로써 유럽 국가들의 군 수송 능력이 대폭 향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럽은 그 동안 독자적 수송 능력 부족으로 주요 군사 작전 때마다 미군에 의존해 왔다. 이 프로젝트는 특히 현재 프랑스와 독일, 벨기에 등이 나토에 대한 보완개념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럽방위정책'의 핵심 내용인 6만 명 규모의 신속 대응군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방 국가의 군 수송기 시장을 독점해 온 미국은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를 심하게 견제했다. 미국은 이 프로젝트가 유럽의 수송 능력 격차를 단기간에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서 유럽은 국방 예산을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유럽은 이 계획의 군사적 중요성 못지않게 군수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에어버스측은 이미 독일 60대, 프랑스 50대, 스페인 27대 등 7개 서명국가로부터 180대의 주문을 받아 놓았다. 향후 20년 동안 해외 수출을 포함해 추가로 200대 이상 주문을 확보할 수 있을 예상하고 있다.
한편 유럽 15개국은 26일 독자적인 위성항법시스템인 '갈릴레오' 구축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 사업도 미국이 강하게 반대해 온 것이다. 이에 따라 수십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전세계 위성항법 시장에서 그 동안 독점적 지위를 행사해 온 미국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치열한 경쟁과 마찰이 예상된다.
위성항법시스템은 인공위성과 지상기지를 이용해 지상 목표물의 위치를 추적, 송신하는 장치이다. 갈릴레오 프로젝트의 사업주체인 유럽우주국(ESA)은 향후 32억 유로(약 4조 3,200억원)를 투입해 2008년까지 인공위성 30기를 쏘아 올려 갈릴레오를 본격 운영할 계획이다. 미국은 갈릴레오 계획이 미국의 GPS 개량형과 주파수 대역폭이 같아 혼선이 생길 수 있으며, 갈릴레오의 개방성으로 인해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유럽이 이 계획을 밀어붙이면 필요 시 미국은 방해전파를 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은 그러나 갈릴레오가 군사적 용도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미국 GPS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것이지 불필요한 중복투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안토니오 로도타 ESA 국장은 이날 성명에서 "오늘은 유럽 전체와 특히 우주분야에 위대한 날"이라며 "위성항법장치의 경제적, 산업적,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해 회원국들이 합의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ESA는 이 프로젝트가 투자액의 460%에 이르는 이익을 내고 14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철기자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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