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전 타계한 작가 이문구의 소설 '월곡후야(月谷後夜)'에는 세계문학 개칠사(改漆師)라는 희한한 직업이 나온다. 개칠사는 유명 출판사가 낸 소설을 마음 내키는 대로 변조하는 사람이다. 간단히 말하면 표절가다. 그의 세계명작은 널리 알려진 대학교수와 이름이 비슷한 가공인물의 명의로 출판된다. 이씨의 소설은 1977년에 발표됐지만, 사정은 지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번역본이 21종이나 되는데, 그 중 14종이 다른 번역본의 오류까지 베낀 표절작이라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지적됐다.■ 한자의 빼앗을 剽, 훔칠 竊이나 plagiari(유괴하다)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영어의 plagiarism은 문자 그대로 글도둑질을 뜻한다. 조선 시대 최고의 여성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도 당시(唐詩)에서 글도둑질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누나의 글을 편찬한 허균(許筠)이 한 일이라는 설도 있다. 위작서를 만들어 조정을 기만한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들도 표절을 하는데 나어린 청소년들의 표절은 애교라고나 할까. '문학사상' 4월호 특집에 따르면 한 문인단체가 주최한 청소년백일장에서는 2년 연속 표절 때문에 수상이 취소됐다.
■ 뉴욕타임스도 기자들의 표절로 큰 망신을 당했다. 한 기자의 표절·허위기사 때문에 5월 11일자에 사과문을 낸 NYT의 조사결과 73건 중 36건이 짜깁기·베끼기한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퓰리처상까지 받은 다른 기자의 표절행위가 또 드러나 조사중이다. 뉴욕 포스트에서도 자유기고가의 글이 문제가 됐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표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지적 절도는 인터넷 이용이 늘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4년 전, 딱 한 문장을 출처 없이 인용했다가 사직한 보스턴대의 언론학과장 같은 사람이 양심적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다.
■ 표절은 인류역사 이래 계속돼 온 일이다. 하늘 아래 독창적인 것이 얼마나 될까마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한 표절도 있을 수 있다. 송(宋)의 문장가 구양수(歐陽修)는 남의 시가 좋으면 무릎을 치며 "어디서 얻어왔는가(何處得來)"라고 물었다고 한다. 무애 양주동은 도쿄유학시절, 하숙동료였던 노산 이은상의 시를 읽고 구양수를 본떠 "어디서 얻어왔느뇨?"라고 물었던 일을 회고록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에 기록하고 있다. 何處得來의 물음에는 감탄과 함께 표절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어 있다. 글 쓰는 사람들이 늘 생각해야 할 질문이다.
/임철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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