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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13> 물꼬 튼 신발 직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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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13> 물꼬 튼 신발 직수출

입력
200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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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치꼬치 트집을 잡는 로저 마틴 때문에 공들여 만든 샘플이 모두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계약을 성사시키려면 미우나 고우나 그의 입맛에 맞춰야 했다. 더구나 시간도 없었다. 리처드 미크와 마틴은 다음날 홍콩으로 떠나기로 돼 있었다.공장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마틴이 지적했던 문제를 뜯어 고친 샘플을 만들어 김포공항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도 JC 페니 한국소장에게 매달렸다. "샘플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공항 VIP룸 구석에 급조된 샘플 전시장에 들른 미크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전날 자신들이 지적했던 문제점을 완전히 보완한 새로운 샘플이 밤 사이에 완성돼 전시돼 있는 모습에 놀란 것 같았다.

물론 일본 중간상들과 함께 미크를 수행하고 있던 마틴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심지어 "진 윤,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자꾸 괴롭히는 거요"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 놓았다.

하지만 의사결정권을 가진 미크의 마음은 돌아선 듯 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더 이상 완벽한 샘플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구매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테니 미국 본사로 샘플을 보내시오."

일단 절반의 성공을 거두자 자신감이 붙었다. '이번 일이 실패하면 나는 사표를 내야 한다. 반드시 계약을 따내고 말겠다' 정성을 기울여 마지막 샘플을 완벽하게 만들어 일주일 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JC 페니 본사는 뉴욕의 힐튼 호텔 바로 옆에 있었다. '여기서도 마틴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나는 전의를 다지기 위해 힐튼 호텔에서 마틴의 사무실이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방을 일부러 숙소로 잡았다.

"뉴욕에 왔습니다. 샘플을 가져왔으니 한 번 보시죠." 아니나 다를까 마틴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만나 주지도 않았다. 매일 전화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최후의 승부수로 미크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미크는 내 전화를 받고 반가워 했고 기꺼이 시간을 내줬다.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자 마틴도 거기에 있었다. 한마디로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이 사람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은데, 한번 믿고 거래를 해봅시다."

미크의 말 한마디로 마틴과의 지루한 신경전은 나의 승리로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마틴 달래기. 신발 담당 실무자인 그가 협조해주지 않으면 지속적인 거래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틴에게 솔직하게 흉금을 드러내 보였다. "직거래로 중간상들이 떨어져 나가면 당신 입장이 어려워지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내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실패하면 나는 사표를 써야 한다."

마침내 마틴도 손을 들었다. "진 윤, 당신이 나를 이겼소. 당신은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야. 단 이렇게 엄청난 비즈니스를 주는 만큼 거래에 문제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드디어 한국 신발업계 사상 처음으로 신발 직수출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JC 페니가 처음 화승에게 주문한 양은 무려 600만 달러 어치였다. 오랜 관행이 깨지자 이후 직거래를 트는 신발업체가 속속 늘어났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화승 미국 지사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JC 페니와 지속적으로 신발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미국 현지에 화승 사람이 상주하고 있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신 지시장은 로저 마틴이 추천하는 사람을 쓰기로 했고, 연봉도 그가 제시한 10만 달러를 주기로 했다. 당시 10만 달러라면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액이었지만, 나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밀어붙였다.

물론 당시로서는 전혀 몰랐다. 화승 미국지사 설립이 나의 발목을 잡을 줄은. 어쨌든 신발 직수출 성사로 회사에서 나의 위치는 확고해졌다. H회장은 나를 스카우트한 것을 행운으로 여길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보냈다.

신발 분야의 성공을 기반으로 나는 점점 다른 분야에도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주로 섬유 분야에 관심을 많이 두었고 직원들을 늘려가며 당초 목표로 했던 종합상사로서 진용을 갖춰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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