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 제기하는 쪽은 주로 보수진영이며, 다수의 진보진영은 소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4월 16일 제59차 유엔 인권위원회는 유럽연합(EU)의 제안에 따라 북한의 인권상황을 비판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이 왜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채택되었는지, 북한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작용한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서는 별도로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이제 유엔의 공식의제가 된 북한 인권문제 자체에 대해 우리의 보수, 진보 양 진영에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먼저 북한 인권에 대한 비판은 극우·수구·반북주의자의 선동일 뿐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단지 '서구'적 인권기준이 아니라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기준, 그리고 북한도 가입한 각종 국제 인권규약에 비추어 보더라도 북한 인권문제는 실재한다. 북한 인민의 경제적 생존권 현황은 제외해놓더라도, 국가원수나 집권당 노선에 대한 비판이 중범죄로 의율(依律)되고, 노동자의 태업이나 파업, 체제비판적 언론, 출판, 집회, 시위에 엄혹한 형벌이 부과되는 것이 북한의 인권현실이다. '수령중심의 유일사상 체제'에 대한 북한 당국의 수사(修辭)로도 이러한 현실을 감출 수는 없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현실이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황과 무관하지 않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현실이 단지 '미제와 남조선의 침략책동' 때문이라고 말하는 북한 당국의 공식논리는 책임회피이다. 이는 과거 남한의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화와 인권개선의 요구를 압살하며 북한의 '적화전략'을 그 주요 이유로 내세웠던 것과 똑같은 변명이다. 남한의 진보진영은 과거 자신이 권위주의 체제에 대하여 비판한 만큼의 치열함으로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비판 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보수진영의 주장처럼 대북강경책을 추구하는 것이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 만약 북한 인민의 '해방'을 위해 이라크식 해결책이 채택될 경우 외부의 침략을 이유로 한 북한 인민에 대한 억압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게다가 남한 사회에서도 냉전적 대결론이 득세하면서 피땀으로 이룩해온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는 스러지고 말 것이다. 또한 남한의 '민주화'가 남한 민중의 자주적 노력으로 성취되었듯이, 북의 '민주화' 역시 기본적으로 북한 인민의 몫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보수진영은 종종 북한의 인권상태가 저열함을 이유로 남한내 인권신장 요구를 묵살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한반도 차원에서 인권의 하향평준화가 아니다. 오히려 남한의 인권수준을 더욱 높이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인권수준을 높이는 지렛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의 보수, 진보 양 진영은 북한 인권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해결책에 대한 기존의 태도를 한번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보수진영은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더욱 고민하고, 진보진영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발언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강조하는 보수진영은 남북의 공도동망(共倒同亡)을 초래하는 '전쟁불사론'을 꺼낼 것이 아니라, '적과의 동침'을 감수하며 공생공영(共生共榮)하는 길에 대하여 고민하길 바란다. 그리고 북한과의 '민족적 연대'를 추구하는 진보진영은 북한 인권의 현실에 대해 침묵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북한 당국에 대하여 비판적 조언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태도전환과 더불어, 북한 인민을 위한 식량, 비료, 약품 등의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 보수와 진보 진영이 합심한다면 우리는 북한 인권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조 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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