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가 27일 삼성과 SK, 두산에 이어 현대산업개발에 대해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통해 총수의 경영권 확보를 꾀했다는 의혹을 제기함에 따라 대기업의 편법적인 경영권 확보·승계 관행이 또 다시 여론의 눈총을 받고 있다.참여연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현대산업개발이 1999년 5월과 7월에 각각 해외 BW를 발행했고, 곧바로 이 해외 BW의 85%와 50%를 대주주인 정몽규 회장이 인수하면서 주가하락에 따라 행사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리픽싱옵션을 받았다고 밝혔다. 해외 BW를 발행한 직후 대부분 물량을 대주주가 인수하고, 리픽싱옵션을 부여한 점 등은 두산의 사례와 흡사하다.
정 회장이 인수한 것으로 알려진 해외 BW는 99년 5월27일 대금이 납입된 83회 BW와 99년 8월10일이 납입일인 86회 BW. 이중 83회 BW의 경우 리픽싱옵션에 따라 행사가격이 4차례나 하향조정되면서 발행 당시 1만1,340원이었던 가격이 현재 5,000원으로 떨어졌다. 이 BW를 주식으로 전환해 인수할 수 있는 주식수는 총 2,043만여주에 달한다.
결국 정 회장은 일부 추가 매입한 BW까지 통틀어 모두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지분율이 현재의 9.7%에서 31.5%로 대폭 늘어난다. 또 83회 BW는 두산과 마찬가지로 1년 뒤 원금을 조기상환, 고작 1년간의 자금 조달을 위해 인수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해외 BW를 발행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참여연대측은 "정 회장이 현대산업개발의 대표이사로 취임하고, 정씨 일가 내부의 소유구조 정비가 이뤄지던 99년, 대주주의 안정적인 지분확대를 위해 특혜성 BW를 발행했다"고 주장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참여연대의 주장에 대해 "재정팀에서 당시의 회계처리과정을 검토하고 있다"며 명확한 입장표명을 유보했다. 그러나 두산의 대주주들이 여론의 질타에 못 이겨 BW를 무상 소각한 지 2개월 만에 유사한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에 현대산업개발은 정 회장의 해명 이상의 대응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영권 확보 및 승계의 투명성에 있어 자유로울 대기업은 없을 것"이라며 "BW를 매개로 한 대기업의 편법적인 경영권 확보·승계 관행이 밝혀짐에 따라 경영권을 2, 3세에게 넘겨야 하는 다른 대기업들의 입장이 더욱 곤혹스러워졌다"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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