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 근처 호수 공원에 갔을 때였다. 어떤 사람이 정말 황소만한 도사견을 데리고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불현듯 내가 수임했던 사건 중에서 낯선 이에게 갑자기 달려드는 개들 때문에 행인들이 다친 사건이 생각나 조마조마해졌다.산책을 마치고 인근 패스트푸드 가게에 갔다. 그런데 이럴 수가…. 한 아주머니가 개를 식탁 위에 올려 놓고 햄버거를 먹이는 것이 아닌가? 개가 편안히 엉덩이를 대고 앉은 식탁에 다시 햄버거를 놓고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아무 소리 못하고 돌아선 나는 이제부터 개고기가 사스 예방에 특효라는 헛소문을 퍼뜨리기로 마음 먹으며 위안할 수밖에 없었다.
개와 마주칠 때 가장 오싹한 곳은 바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이다. 맙소사. 그럴 때면 나는 개에 물어 뜯기는 공포영화의 장면들이 생각난다. 본능적으로 나는 그 경우 마치 어두운 골목에서 불량 청소년들을 만났을 때처럼 비굴한 표정으로 억지 미소까지 지으면서 가급적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쓴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요. 이 개는 귀엽고 순해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 때 어금니를 드러내며 위협하는 개가 나를 똑바로 노려보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뜬금없이 햇볕 정책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뭐 내가 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집에서 개를 키우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초등학교 1학년쯤에 집에 잡종견 '도티'가 있었는데 머리가 나쁜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말썽을 많이 피우던 도티가 어느 날 쥐약을 먹고 세상을 떠난 이후(삼가 도티의 명복을 빈다)에는 개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요즘 퇴근 후 집에 와서 보면 아내도 아들 녀석도 시큰둥하고 도무지 반가워 하는 기색이 없다. 그래서 내가 낸 꾀가 개를 키우는 것인데 최소한 집에 들어갈 때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 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개를 키워 볼까? "절대 안돼!" 이건 아내의 엄포다. "알아서 해요." 이건 아들의 반응이다. 그런데 뜻밖에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찬성했다. "정말 좋은 생각이야." 감격한 나머지 내가 물었다 "왜요?" "북핵 문제를 고려할 때 군견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역시 전쟁 세대의 관점은 특이하다.
김 형 진 국제법률경영대학원 교수·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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