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골프를 망치는 추억"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골프를 망치는 추억"

입력
2003.05.27 00:00
0 0

2년전쯤으로 기억한다. '골퍼와 백만장자'라는 다소 생소한 제목의 번역서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적이 있다. 마크 피셔라는 캐나다의 인기작가가 쓴 이 책은 젊은 골퍼의 좌절과 성공,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흥미롭게 그려내 골프책 치고는 이례적으로 '비 골퍼도 읽어볼 만 한 책'이라는 평을 받았다.내용은 대충 이렇다. 미 프로골프 정상에 오르는 것이 꿈이던 한 골퍼가 프로테스트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실수를 거듭해 꿈을 접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다 음주운전사고로 노년의 백만장자를 만나게 된다. 골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백만장자는 젊은 골퍼를 금전적, 정신적으로 지원하게 되고 그 덕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이 골퍼는 챔피언에까지 오른다는 내용이다.

현실에서는 있을 법할 것 같지 않은 스토리지만, 구두닦이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백만장자로 성공한 노년의 신사가 골퍼에게 들려주는 정신적인 레슨들은 여러모로 시선을 끈다.

"내면의 힘을 믿어라. 성공은 여기서 출발한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라. 사랑은 인내와 성공하려는 의지를 준다." "모방은 매우 효과적이다. 쓸데없는 일을 답습할 필요가 없어진다." "연습을 많이 할수록 운도 더욱 좋아진다." 새롭지는 않지만 한번쯤 더 귀담아 들을 만한 경구들이다. 골프광들이 흔히 되뇌이는 '골프는 인생과 비즈니스의 축소판'이라는 문장과도 맥이 닿아 보인다.

백만장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前) 홀은 아예 기억에서 없애라'는 말을 주문외듯 골퍼에게 주입시켰고, 이 레슨은 챔피언 등극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실제로 망쳐버린 '전 홀의 추억'이 정신과 근육을 위축시켜 현재의 홀을 망가뜨리는 일은 다반사다. 반대로 화려했던 샷만을 떠올리며 실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호기를 부리다 낭패를 보는 일도 잦다. 여기서 비롯되는 실책은 18홀이라는 정해진 '기간'내에 좀처럼 만회하기 어렵다. 초보일수록 이 현상은 더욱 극심하다.

골프만의 얘기일까. 뒤죽박죽이 된듯한 나라꼴이 '전 홀의 추억' 때문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최고 통치자의 한쪽 편들기 성향과 발언, 말 많음, 거친 입은 상당부분 그의 과거의 기억과 체험이 그를 아직도 지배하는 데서 연유한다. 골퍼가 과거에 사로잡히면 하체 힘이 빠지거나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 샷을 망치듯이, 통치자의 '옛날 생각'은 나라의 중심을 뒤흔든다.

그의 주변도 예외는 아니다. 화염병 몇 번 던진 것 이상의 경력을 가진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포진한 주변 세력을 지배하는 것 역시 '전 홀의 추억'들이다. 매우 중요한 플레이어들이 한쪽으로 경도돼 균형감과 현실감을 잃으면 갤러리는 흥미를 잃고 고통스러운 상황에까지 빠진다. 지금이 꼭 그 모양새다.

대통령이 골프를 좋아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부인 권양숙 여사, 참모진과 라운딩을 하면서 생애 첫 버디를 잡았다는 후문이다. 골퍼로서 초보단계는 훨씬 지난 것 같다.

과거는 그 명암을 떠나 일단 지우고 현실에 발을 딛고 하체를 단단히 해야만 필드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필드 바깥에서도 실타를 최소화할 수 있다.

김 동 영 체육부장dy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