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자치단체들이 설립을 추진중인 특수 목적고의 대부분이 요건 미비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들 자치단체는 각종 규제로 설립이 불가능한 곳을 학교 부지로 내세우는가 하면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법도 없이 특목고 설립을 추진,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경기도 교육청은 최근 지역별 수요를 토대로 특수목적고, 특성화고교 추진 현황을 검토한 결과 수도권 자치단체가 추진중인 특목고 19곳 가운데 수원외고, 성남외고, 안산외고, 동두천외고 등 4개만 설립을 허가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4개교는 내년 실시설계를 거쳐 이르면 2005년 개교한다.
교육청 관계자는 무더기 불합격 판정에 대해 "자치단체들이 설립 요건 등을 엄밀하게 분석하지 않은 채 무작정 특목고를 세우겠다고 뛰어들었다"고 꼬집었다.
자치단체들의 특목고 추진 붐은 성남(분당) 고양(일산) 부천(중동) 안양(평촌) 과천 군포(산본) 등 수도권 6개 지역에 고교 평준화제도가 도입된 2002년부터. 이들 지역의 평준화 조치는 학부모 대다수의 환영을 받았지만 일부는 분당 S고, 일산 P고, 안양 A고 등 이른바 명문고가 사라지게 됐다며 반발, 서울 강남으로 이사했다. 이 같은 이사 행렬은 강남지역의 집 값을 껑충 뛰게 만든 요인이 되기도 했다.
평준화제도가 '성적 우수 학생의 강남 유출' 이라는 뜻밖의 사태를 불러오자 수도권 자치단체는 이를 막겠다며 특목고 유치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우수 학생 유출 예방이라는 명분 외에도 특목고 유치를 중요 치적으로 내세우려는 단체장의 계산도 작용했다. 경기도는 우수 인력 확보 차원에서 특목고 설립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 자치단체의 설립 욕구를 부추겼다.
그러나 경기도 교육청의 검토 결과 드러난 것처럼, 자치단체가 추진하는 특목고 대부분에 불합격 판정이 내려졌다.
시흥과학고, 구리예술고, 부천외고, 광명외고 등은 2005, 2006년 개교할 예정이었지만 부지가 그린벨트에 위치, 사실상 설립이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반 초·중·고교는 그린벨트에 들어설 수 있지만 특목고는 들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자치단체들이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용인시가 한국외대와 공동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용인외고는 재원 마련이 불투명한 상태며 군포외고는 택지지역내 종교시설 부지에 학교를 짓겠다고 했으나 이 역시 재원마련 방법이 마땅치 않은 실정. 오산외고는 부지가 백제때 조성된 사적140호 독산성과 인접해있어 개발이 불가능하며 광주 동성국제고는 외국인 교사를 채용하고 외국 교과서를 사용하는 획기적인 운영방안을 마련했으나 이는 경제특구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청평에 추진되던 청심국제고도 같은 이유로 특목고 설립이 불가능한 상태. 양주과학고는 인근에 경기 제2과학고가 2005년 개교할 예정이어서 지역안배 차원에서 설립이 힘들다. 민간인 홍익대는 경성고를 인수, 화성예고로 변경하겠다고 교육청에 신청했으나 교육여건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특목고 설립 바람을 주민과 시민단체는 곱지 않게 보고 있다. 안양시 주민 김모(54)씨는 "학생들의 과잉 경쟁을 없애기 위해 고교 평준화를 시행해 놓고 불과 1년 만에 특목고 설립 운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그나마 요건도 갖추지 않아 자치단체들이 대외과시용으로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도 "특목고 설립은 고교평준화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경기도 교육청 관계자는 "자치단체의 특목고 설립 추진은 단체장의 생색내기와 무관하지 않으며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 빈 땅만 있으면 세우고 보자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글·사진=한창만기자 cm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