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한가벼."( 부끄러운가봐) "거시기가 벌써 거시기 해부렀는갑다."(행사가 다 끝났나보다) 영화 '황산벌'의 제작발표회가 열린 충남 백제군 백제오천결사대출정상 앞. 구경 나온 동네 사람들 입에서 '거시기'란 말이 끊이질 않았다. '거시기한 코미디'란 영화의 광고 문구가 결코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변방의 언어'인 사투리가 문화 중심부로 다가오고 있다. TV에서는 생활 사투리가 쏟아지고 있고, 라디오 CF에서는 사투리를 흉내낸 어투가 유행하고 있다. 영화계에서도 '친구' 이후 조폭 영화가 쏟아지면서 호남과 영남 사투리는 조폭의 공식 언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러나 요즘 사투리는 다양한 장르로 퍼지며 그 자체가 하나의 유행 코드가 되고 있다. 딸을 짝사랑하는 남학생(차태현)을 물리치기 위한 교사(유동근)와 남학생의 좌충우돌 충돌을 담은 코미디 '첫사랑 사수 궐기 대회'(감독 오종록), 반백수로 살아가는 20대 청년(정우성)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 '똥개'(사진) 역시 부산 사투리가 핵이다.
최근 크랭크인한 역사 코미디 '황산벌'(감독 이준익)은 사투리가 백제와 신라의 중요한 갈등 요소가 될 뿐만 아니라 전쟁의 방향까지도 틀어버리는 결정적 단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투리는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백제 말을 염탐하는 신라의 밀사 겸 통역병이 나오고, 이들은 작전 중 나온 '거시기'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애가 탄다.
호남 영남에 국한됐던 사투리가 좀 더 다양한 지역의 사투리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영화 내내 "∼아니드래요" 식의 강원도 사투리가 쓰인 '선생 김봉두'는 우리 영화계의 새로운 사투리 시도. 북한 인민 무력부장의 딸(김사랑)과 서울의 바람둥이 대학생(조인성)이 옌볜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남남북녀'(감독 정초신)는 당연히 북한과 옌볜 사투리가 대사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사투리가 많아진 것은 영화가 서울 중심의 제한적 이야기에서 반경을 넓히며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의 이야기가 영화에 담기게 되면 '조폭은 호남 사투리를 쓴다'는 식의 편견이 무너지며, 여기에서 새로운 웃음과 이야기가 생겨난다. 각 지방의 사투리도 중요한 문화유산이라는 언어의 탈중심적, 다원적 사고가 우리 영화계, 방송계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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