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아야.우리 딸 벌써 중3이네. 시험 기간이라 그런지 요새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있더라. 책과 씨름하는 널 보면 아빤 솔직히 대견하기보다는 애처로운 마음이 더 앞서. 그놈의 공부가 뭔지… 우리 귀한 딸 잡는다는 생각 뿐이야.
네가 15개월 되던 때 정형이가 태어났지. 모든 게 서툴렀던 엄마 아빠라 넌 어릴 때부터 응석 한 번 제대로 부리지 못했지. 한 살 터울의 동생에게 엄마 사랑을 모두 빼앗기고도 투정도 별로 않던 너였지. 천성이 어디 가랴. 지금도 네 일을 일찌감치 끝내놓고 너보다 더 큰 동생까지 챙겨줘 아빠를 감동시키는구나. 그러다 보니 아빠는 그걸 당연하게만 생각해온 것 같아 미안하구나.
경아! 이젠 서울말이 더 어색하겠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를 따라 대구로 이사와 낯설고 억센 사투리에 힘들어 했던 기억 나니? 국어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 받아쓰기 시험점수가 엉망이라고 속상해 했지. 아빠는 말수까지 적은 네가 외톨이가 될까 걱정했지만 친구들이 하는 사투리가 재미있다며 말투를 흉내내며 금방 어울렸지.
경아! 그런데 아빠가 막상 편지를 쓰려니 어떻게 된 게 미안하다는 말하고 고맙다는 말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집에서 뒷바라지 해주던 엄마가 회사를 다니면서 너희를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했는데 오히려 엄마를 대신해 동생까지 돌봐주니 고맙고 미안할 수밖에.
정형이가 그러더라. "과외선생님보다 누나가 가르쳐주는 게 더 쉽다"고. 시험기간에는 네가 공부할 시간도 부족할 텐데 정형이가 모르는 걸 몇 번이나 물어봐도 짜증 한 번 내지않고 가르쳐준다고 네 동생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넌 빼앗긴 시간을 보충한다고 늘 새벽이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지. 그런데도 아빠는 일에 매달려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네게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지냈지? 오히려 그런 나에게 "피곤하시죠"라고 말해 아빠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란다. 아빠는 주위 사람한테는 곧잘 가족을 사랑하라느니, 자녀들과 많은 대화를 하라며 때론 편지도 보내라고까지 하면서 정작 내 딸한테는 그러지 못했다. 미안하다. 경아, 아빤 너에 대한 사랑을 무슨 보물인 양 꼭꼭 숨겨두기만 했어. 표현력이 부족한 아빠지만 너를 위해서라면 아빤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어. 아빠가 한가지 약속할게. 이제부터 아빠가 먼저 문자메시지도 보내고 좀더 가깝게 다가갈게.
사랑하는 내 딸아. 너의 환한 빛이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기쁨이 되리라 믿어. 넌 벌써 우리 가족을 밝게 비추는 빛이거든. 최선을 다하는 네 모습과 주변을 배려하는 따뜻함은 네가 커 사회에 나갈 때 튼튼한 재산이 될 거야. 아빤 그게 너의 시험성적이나 등수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이동진·대구 수성구 지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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