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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여사의 TV보기]토론과 오락, 안타까운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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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여사의 TV보기]토론과 오락, 안타까운 줄타기

입력
2003.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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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대화를 좋아하는 대통령 때문일까. 전에 없이 토론 프로그램이 인기다. 더욱이 정치 경제 등에 한정됐던 토론의 주제가 이제 개인의 고민거리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KBS2 '논쟁 버라이어티, 당신의 결정'(화 오후11시5분)은 오락의 성격이 가미된 토론 프로그램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개인의 고민을 토론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자'는 것이 기획의도다. 딱딱하고 제한적이던 토론 주제에서 벗어난 점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기대도 된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의뢰자가 처한 상황을 재연 드라마로 보여준다. 이어 의뢰자가 큰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자신을 감춘 채 등장한다. 주부 프로에서 고민을 가진 주부가 나올 때 쓰는 방법이다. 토론이 아니라 고민을 상담 받는 시간인 듯한 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진행자와 게스트들이 소개되는데 이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진지하다 못해 침통하다. 지난주 방송에서는 '열 한 살에 부모에게 버림받은 26세 여성이 결혼을 앞두고 양가 상견례를 위해 부모를 찾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다룬 아픈 사연 때문인 듯 일부 패널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카메라는 이 모습을 놓치지 않고 클로즈업했다. 도입부터 감상적 기류가 느껴졌다. 전형적 토론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객관성이 유지돼야 하는 토론 프로그램으로서의 기본이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본격적 논쟁에 들어간다. '아버지를 찾지 말아야 한다'를 대변하는 진행자 이휘재의 주장이 우습다. "11세 때 버려진 것이 용납이 안 되기 때문"이란다. 특별한 근거 없이 단지 용납이 안되기 때문에 찾으면 안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아버지를 찾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찾아야 한다는 쪽으로 자리를 옮긴 홍록기는 "자식을 버린 부모님을 자식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이용하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다른 패널이 반대를 하자 히죽 웃으며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 돼?" 하며 궁둥이를 들썩거린다. 토론이 코미디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패널끼리의 예의도 없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소리를 높여 토론은 이내 말싸움으로 전락한다. 진행자는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패널 중에는 외국인도 두 명이나 있다. 정서적으로 공통 분모가 없는 외국인이 제대로 조언할 수도 없고 그들의 조언이 의뢰자의 판단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분명하다. 연예인 중심의 패널 구성과 구색 맞추기로 끼워넣은 외국인 패널까지 참으로 오락적이다.

난상토론을 지켜보던 의뢰자는 아버지를 찾기로 최종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패널의 토론이 의뢰자의 결정에 도움이 되었는지, 그리고 의뢰자가 정말 도움을 받기 위해 나왔는지 못내 의심스럽다.

'당신의 결정'이 일반인의 고민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토론 형식을 통해 어떻게 풀어놓을지 무척 궁금했다. 그러나 새로운 형식의 토론이 아니라, 토론이라는 형식을 일부 가미한 오락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맹숙영·방송모니터 www.goodmonitor.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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