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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영박사에게 상담하세요]따로 사시는 노모 유서 자주 쓰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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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영박사에게 상담하세요]따로 사시는 노모 유서 자주 쓰시는데…

입력
2003.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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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사시는 70대 어머님의 자살이 걱정되는 둘째아들입니다. 어머님은 얼마 전에 "죽고싶다"는 말씀을 두어 번 하셨고 어제 저녁에는 늦도록 귀가하지 않으신다기에 가서 어머님 서랍 속을 조사하다가 한구석에서 '못난 나를 용서하라'고 오래 전에 써 두셨던 유서를 발견하였습니다. 다행히 어머님은 태연히 귀가하셨지만 오늘 다시 서랍을 몰래 열어보니 어제 이웃동네 고층아파트 옥상에서 쓰신 '여기서 투신해서 주민에게 죄송하다'는 유서가 또 있었습니다. 어찌하면 좋지요?(대전 유성 주씨)

얼마나 놀라시고 당황하고 계신지 짐작이 갑니다. 한마디로 어머님은 지금 위급한 상태여서 당장 정신과 입원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노년기 자살은 남성에서 많고 여성에서 적습니다. 여성은 여기저기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잘 받아 그 자존심으로 인해 자살률이 낮으나 남성은 반대로 무용지물이 되어 집 안팎에서 기가 꺾여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은 유서내용으로 보아 오랜 우울증에 시달리고 죄책감에 차 계신 분으로, 어려서 엄한 도덕률 속에서 성장하신 듯 싶습니다.

어머님이 쓰셨다는 유서는 전문가 안목에서 긴박감과 안도감, 두 상반된 느낌을 동시에 받습니다. 안도감을 주는 이유로는 유서작성 일자가 오래 되었고 좀처럼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서랍 한구석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자살시도를 망설여 매일같이 미루고 또 미루고 계시다는 뜻이라서 다소 시간여유를 줍니다. 또 내용이 단지 자신만을 탓한다는 것도 그러하지요. 정말 죽을 사람은 마지막이니 남에게 섭섭한 생각도 표현하는 수가 많습니다.

반대로 긴박감을 주는 요소로는 유서가 시간 간격을 두고 여러 장이 있으며, 염두에 두신 자살방법이 점차 심각해진다는 것이지요. 음독기도에서 살아날 확률은 많으나 고층건물 투신은 즉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로 볼 때 어머님은 몇 번 가볍게 음독을 하셨다가 스스로 살아나시면서 그런 사이에 가족이 눈치를 채 말려주기를 고대한 듯 싶군요. 그러다가 반응이 없으니 어제는 드디어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고, 직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자신과 가족에게 기회를 준 격입니다.

자살할 사람은 십중팔구 가족과 주위에 직접 간접으로 알립니다. 그리고도 반응이 없으면 결행하지요. 전혀 눈치를 못챘다는 가족의 뒷말은 대개 죄책감에서 온 부지불식간의 거짓말일 경우가 많아요. 가족과 의사의 관심을 받으면 어머님은 잘 회복하실 것입니다.

/서울의대 신경정신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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