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딩동 딩동댕 유치원이 열렸다 딩동댕∼" "떠들썩 떠들썩 들썩 들썩 떠들썩∼"어깨가 절로 들썩여지는 신나는 노래로 꼬마들의 아침 잠을 깨우는 EBS '딩동댕 유치원'(월∼금 오전 8시10분)과 KBS1 'TV유치원 하나둘셋'(월∼토 오전7시45분). 1982년 나란히 문을 연 두 유치원은 방송사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영재교육이다, 조기영어교육이다 해서 유아교육계 풍토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했는데도 두 프로가 20년 넘게 변함없이 사랑을 받고 있는 데는 터줏대감들의 공이 크다.
'딩동댕 유치원'의 '뚝딱이 아빠' 김종석씨("평생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며 끝내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와 'TV유치원'의 '붕붕 아저씨' 이근희(43)씨. 막말로 '돈 안되는' 어린이 프로를 고집스럽게 지켜온 두 사람이 만나 동심의 세계에 흠뻑 빠져 사는 즐거움, 그리고 남 모르는 고달픔 등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이근희 가정의 달 5월이라 많이 바쁘시죠?
김종석 각종 어린이행사 MC로 초청 받아 전국 방방곡곡을 뛰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아이들 보면 금세 피로가 사라져요. 나야 평생 이 길 가겠다고 작정한 사람이지만 연극인으로, 탤런트로 바쁜 근희씨가 어린이들 곁을 오래 지켜주는 걸 보면 참 고맙고 든든해요.
이근희 대학 졸업 후 10년간 '방황하는 별들' 등 별 시리즈로 유명했던 동랑청소년극단에서 활동하며 한때 아동극 전문가를 꿈꿨죠. 그 싹이 남아 어린이 프로와 인연이 닿은 것 같아요. 'TV유치원'에 출연한 지 올해로 벌써 8년째네요. 그래도 어디 형님만 하겠습니까.
김종석 '딩동댕 유치원'에 나온 건 92년부터지만, 84년 MBC '뽀뽀뽀'로 아이들과 처음 만났으니 올해가 꼭 20주년이지요. 어린이 프로에도 전문가가 필요하다 싶어서 본업인 개그맨도 포기했죠. 개그맨 계속 했으면 이홍렬씨 정도는 됐겠지만(웃음) 절대 후회 안해요.
이근희 참 대단하십니다. '붕붕 아저씨'는 매일 다른 역할로 나오는데 그 동안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같은 위인들에서 동·식물, 바위 바람 미생물 등까지 어림잡아 1,000가지가 넘는 캐릭터를 소화했어요. 충치마왕 같이 상상력이 가미된 역할 외에는 되도록 '오버'하지 않고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애써요. 하지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김종석 맞아요. 꼬마 도깨비 '뚝딱이'도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뚝딱이' 혼자는 외로울 것 같아 아빠와 할머니, 친구들을 등장시켜 틀을 갖추기까지 10년이 걸렸어요. 빠듯한 제작비지만 좀더 좋은 프로 만드느라고 제작진들 참 고생 많이 합니다.
이근희 'TV유치원'이 26일부터 새 단장을 했어요. 파파와 노노라는 새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무대도 확 바꿨지요. 하지만 '텔레토비' 같은 세계적 어린이 프로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죠. 사이판이나 괌에서 그 나라 꼬마들이 저를 알아봐 깜짝 놀란 일이 있어요. 한국인 친구 집에서 'TV유치원'을 봤다는 거예요. 몇 해 전 '태조 왕건' 만들 때 KBS 사장님이 '제작비 걱정 말고 잘 만들라'고 했다는데, 그 비용의 10분의 1만 투자한다면 어린이 프로도 '한류' 열풍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요.
김종석 사교육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지요. 시청률이 5%만 돼도 70만명 가량이 보는 것이니 '대박'이지요. 어린이 프로 투자에 인색한 방송사도 문제지만 더 넓게는 유아교육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근희 아이들과 지내면 젊어진다는데 형님을 보면 정말 그 말이 맞다 싶어요.
김종석 누구는 쫀쫀해졌다고도 하던데…. 작은 일에 감동하고 기뻐하고, 또 쉽게 삐치기도 하지만 금세 잊어버리죠. 뇌를 덜 쓰고 스트레스 덜 받아 그만큼 덜 늙는 것 아닐까. 아무튼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말 씀씀이에서 생각과 행동까지 달라졌어요.
이근희 맞아요. 우리 같은 사람은 절대 나쁜 짓 못하죠. 신문에 '붕붕 아저씨 사기 피소' '뚝딱이 아빠 음주운전 구속' 이런 기사 나오면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겠어요. 혹시 제가 실수로 나쁜 짓 하더라도 아이들을 생각해서 정부에서 봐줘야 합니다, 하하.
김종석 예전에는 촬영 끝난 뒤 꼼짝 않고 서있는 아이가 더러 있었어요. 눈 부신 조명에 부산하게 움직이는 카메라, 스태프들의 고함소리에 놀라 오줌을 싼 거죠. 그래서 촬영 날이면 팬티를 몇 장씩 준비하곤 했어요. 헌데 요즘은 연기학원 거친 아이들이 많아 NG 나면 창피하다고 울어요. 연기는 똑 부러지게 잘 하지만 동심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죠.
이근희 아이를 연예계 스타 만들려고 목숨 건 엄마들이 많아요. 자기 아이를 더 돋보이게 하려고 치열한 신경전까지 벌이고, 치맛바람이 대단합니다.
김종석 그런 엄마들에게 여기도 엄연한 유치원이다, 연예인으로 키우려면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고 따끔하게 말하죠. 무조건 최고로 만들려는 교육방식도 문제예요. 그래서 요즘 '넘버 원'이 아니라 '유니크 원', 즉 개성있고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요.
이근희 저는 아이가 없어 잘 모르지만 자식들이 부모 품 안에 있는 건 길어야 열 네살까지래요. 스스로 생각하고 홀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참된 부모의 역할 아닐까요.
김종석 자매 프로인 공개방송 '모여라 딩동댕' 녹화할 때 어릴 적 제가 나오는 프로를 본 사람들이 부모가 돼 아이 손 잡고 오는 경우가 있어요. 대를 이어 저를 보고 자란다니 참 뿌듯하죠.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이야기 할아버지'로 남고 싶어요.
이근희 저도 동네에서 만난 중학생 녀석이 "붕붕 아저씨다" 하고 인사해 흐뭇했던 일이 있어요. 어른이 되어 찾은 초등학교에서 옛 은사를 만났을 때처럼 그 아이도 제게서 그런 반가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그래서 이 일을 쉽게 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밤을 새도 모자랄 듯한 만남을 아쉽게 마무리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김씨는 "유아교육에 관해 좀더 깊이 있고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서 성균관대 박사과정에 지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청소년 연극을 다시 해볼까 한다. 요즘 동랑극단 시절 같이 활동한 최민수 허준호 김규철씨 등과 만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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