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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폭주에도 삶을 즐기는 홈플러스 이승한 사장/ "나만의 행복설계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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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폭주에도 삶을 즐기는 홈플러스 이승한 사장/ "나만의 행복설계도 있지"

입력
2003.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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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회의, 상황보고, 명사접견, 현장시찰, 간부회의, 초청강연, 박사논문 정리, 여기에 2∼3주마다 이어지는 잦은 해외 출장…' 새벽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에 들어오는 게 일상인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의 이승한(57) 사장의 외형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를 '일중독자(Workaholic)'이라고 부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사장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은 그를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인간미가 흐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사장은 해외출장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양말만 갈아 신고 동네 친구 모임에 달려가고, 대학생 딸과 '브라운 아이즈'의 노래 '점점'에 장단을 맞추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며 전략회의를 이끌고, 집에선 매일 밤 12시에 책 한 권을 특유의 '대각선 속독'으로 읽는다. 사업에서의 성공 못지 않게 가정과 친구, 동료 등 주변 사람을 고루 배려하려고 애쓰는 이 사장의 노력과 열정에 사람들은 놀란다.

이 사장이 이처럼 바쁜 최고 경영자이면서도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잘 챙기는 데는 나름대로의 비법이 있다. 바로 자신의 모든 생활을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하고 실천하는 '스티어링 휠' 덕택이다.

이 사장의 사무실과 가정에는 다트판 모양의 생활 설계도가 걸려 있다. 이 스티어링 휠은 인생의 최고 가치인 '행복'의 기본 요소로 일, 가족, 건강, 친구 등 4가지 요소를 설정하고, 구체적으로 관리할 세부 계획과 방법론을 세심하게 분류해 놓고 있다.

한 예로 '가족 부문은 병아리(신혼), 동아리(취미), 도우미(봉사)로 분류하고 각 분야별로 기념일 챙기기, 편지쓰기, 최신곡 배우기, 이웃돕기 식으로 목표와 실천 사항들을 정해 놓았다.

"바쁘게 업무에 매달리다 보면 주변에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CEO나 중역이 되면 가족과의 대화나 친구와의 교류, 문학적 소양을 누릴 여유가 없습니다. 바람직한 CEO의 삶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정, 이웃, 친구, 건강은 인생에서 기쁨과 보람을 주는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직장인이라고 해서 이를 소홀히 해선 안됩니다. 그러려면 시간과 노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스티어링 휠은 자신의 생활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사장은 이를 '라이프 매니지먼트'라고 말한다. 업무에서의 효율성을 잃기 않으면서도 스스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생활 관리야 말로 현시대를 사는 직장인들에게 없어선 안될 필수요건이라는 것이다.

이 사장의 스티어링 휠은 단지 계획만을 늘어놓는 인생 시간표가 아니다. 이 계획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때는 적색 경고가 주어진다.

최근 경고를 받은 분야는 건강의 '습관 컨트롤' 분야의 숙면 코너. 이 사장의 계획에 따르면 본래 하루 6시간 수면을 취하도록 돼 있는데 회사 일에 몰려 하루 4시간 밖에 잠을 못 잔다는 것이다.

부인 엄정희씨는 "2년 전 애 아빠가 비행기 안에서 문뜩 '회사 경영 지표처럼 인생 지표도 만들겠다'며 그린 것이 스티어링 휠"이라며 "이를 통해 가족 전체 삶의 질이 훨씬 풍요롭고 여유로워 졌다"고 말했다. 딸 현주양도 "엄했던 아빠에게 지금은 남자 친구 e메일도 보여줄 정도"라고 말했다.

이 사장이 가족, 건강, 친구에 의미를 두는 데는 몇 번의 계기가 있었다. 1986년 이 사장 부부는 어렵게 얻은 아들 성주(당시 초등학교 1학년)를 잃는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했다. 이 충격으로 이듬해에는 부인이 위암 선고를 받는 불행이 이어졌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부인은 완치됐지만 두 차례의 시련을 통해 이 사장은 가족과 건강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너무 숨가쁘게 사는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이것은 삶의 큰 흐름을 스스로 조절·관리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다짐입니다. 나태하고 소극적으로 변하는 일상에 활력을 주고, 분에 넘치는 욕심은 절제하는 조정기능을 수행합니다. '인생시계'의 후반기에 들어설수록 주변의 '작은 것'들이 더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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